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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맞벌이 시대에는 맞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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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남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장

코로나19로 인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된 이후 가족들이 집콕을 하면서 '살림', '돌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가족의 귀환, 살림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그동안 어린이집, 학교, 학원, 회사로 각각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온종일 좁은 공간에 같이 있으니 부딪치는 일도 많고 어떻게 지내야 할지 어색한 순간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삼시 세끼' 해결이 가장 큰 숙제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돌밥'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옛날에 팔순 노인이 임종의 순간에 손사래를 치며 뒤에 '살림'이 못 쫓아오게 하라고 했단다.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살림이라는 얘기다. 물론 그 시절에는 여성의 노동이 아니면 입에 밥이 들어가기 힘들었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사먹고 배달시켜 먹고 많이 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족을 먹여 살리고 돌보는 일은 고달프다.

남성이 밖에 나가 돈 벌어오고 여성은 집에서 자녀 양육과 노부모 돌봄을 했던 시절에는 살림과 돌봄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었다. 하지만 강원도 가구의 53.5%(전국 평균 43.6%)가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돌봄과 살림을 여성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저출산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도 바로 독박 육아, 대리 효도로 대표되는 '독박 돌봄' 문제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에 매진하느라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돌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차별과 불이익을 줘왔다. 가정 안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자를 돌보는 돌봄 노동자들 역시 대부분 여성으로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처해 있음을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잘 알게 됐다. 이제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경제위기가 올 때마다 여성을 다시 가정으로 들여보내는 해결방식은 이제 변화돼야 한다. 사회적으로 돌봄 노동의 가치에 대해 다시 평가하고 어떻게 공정하게 분담할 것인지 인프라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가 여성 고용에 미친 영향이 가장 컸던 부분은 불안정 고용층이 밀집된 20대 초반으로 10만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밀집해 있는 숙박 및 음식점업, 도소매업, 교육서비스업, 개인서비스업 등에서 여성 임시·일용 근로자 수가 크게 감소하는 등 코로나 위기가 집중적으로 여성을 강타했다. 휴교와 자가격리 등으로 인해 여성들은 그동안 애써 일궈 온 직장경력을 뒤로하고 다시 가사와 돌봄으로 회귀하고 있다. 일시적이든 항구적이든 돌봄의 위기와 부담을 여성의 어깨에 지우는 것은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없다.

강원도 가구의 절반 이상이 맞벌이를 하는 시대에 돌봄을 여성의 역할로 전제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여성이 맞벌이를 위해 경제 영역에 들어가 책임을 분담한 것처럼 남성도 '맞돌봄'을 위해 가정에서 돌봄 책임을 하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 남성도 아빠, 아들로서 자녀·부모 돌봄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며 함께 돌보는 기업문화를 적극 실천해야 한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남성들은 정시 퇴근(칼퇴)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가 돼야 지속 가능한 강원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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