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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동양자수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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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교 전 오죽헌시립박물관장 문학박사

“어머니는 어렸을 때 경전에 통했고 글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게다가 바느질과 수놓기까지 정밀하고 교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율곡이 16세 때 어머니를 여읜 슬픔을 달래려 상중에 쓴 '어머니행장' 일부 내용이다. 468년 전 아들 율곡이 밝힌 정묘한 어머니 자수로 인해 우리나라 자수는 강릉이 원조가 됐다. 동아대 박물관 소장 보물 제595호 사임당 '초충도수병'은 우리나라 자수품 가운데 최초 국가지정문화재로 이름을 올렸고, 5만원권 화폐도안에도 '초충도수병'에 나오는 자수 가운데 가지가 들어 있다.

원로 미술사학자 강우방 한국미술사연구원장은 “강릉수보자기는 노트르담 대성당 천국의 대문과 필적할 수 있는 경이적인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세계미술을 섭렵해 온 미술사학자가 이런 고차원적인 조형과 상징을 표현한 자수박물관 소장 강릉자수를 보고 감탄을 쏟아 낸 것이다. 또 2018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전 세계 외신 기자들로부터 조명을 받으며 강릉만의 독특한 강릉수보와 강릉색실누비 작품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강릉색실누비는 동계올림픽 예술포스터 '겨울스티치 사랑과 기원'의 모티브가 됐다.

이처럼 참신한 조형과 신선한 색감의 조화, 기품 있는 특이한 색채 구성, 단순한 침선 기술을 넘어선 마음과 혼이 담긴 강릉동양자수박물관 예술품이 올 연말이면 봇짐을 싸야 한단다. 봇짐을 싸면 정처 없는 유랑 길에라도 올라야 할 텐데 박물관 측은 정든 자수품 손잡고 오를 유랑 길도 없다고 한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옷소매를 붙잡아야 할 근거가 미약해 어쩔 도리가 없다는 관계기관이나, 안타까워하는 시민들도, 사임당 자수 맥을 잇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동아리회원들도 속수무책이다.

1992년 강릉향토사료관이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임당습작매화도'와 현종 임금 셋째 딸 '명안공주 관련 유물'을 구입할 때 일이다. 못 믿겠다며 1억8,000만원 예산을 세워주지 않자 가짜로 판명되거나 평가액이 구입 가격에 미치지 못할 시 전액 변상하겠다며 사직서와 퇴직금 산출액, 초라한 집문서까지 들고 가 책임지겠다고 각서를 쓰고 구입한 적이 있다. 결국 국가문화재 지정 사상 유례가 없는 45점이 보물 제1220호로 일괄 지정됐다.

문화재로 지정된 작품도 매매는 가능하나 지정되기 전과 지정된 후의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는 없다. 자수박물관에서는 먼저 보유한 유물을 선별해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시에서는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그때까지 현 위치에 전시하면 된다.

1992년에 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 '미술관이란 예술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는 곳'이라 했다. 동양자수박물관은 현재 이 같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한 건물에서 조화롭게 공존한다면 문화 향유를 누리려는 시민들은 환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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