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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진짜 사나이'

고문관(顧問官)의 사전적 의미는 자문에 응해 의견을 말하는 직책을 맡은 관리를 일컫는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이들에게는 다른 뜻으로 더 낯익은 용어다. 주로 행동이 답답하거나 어리바리해 적응을 제대로 못하는 병사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통용된다. 미 군정 시대에 파견 나온 미군 고문관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못하고 어수룩하게 행동했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고문관'을 뜻하는 단어도 다양화됐다. '관심병사', '주의병사', '구멍 병사' '군대 무식자' 등이 유사한 뜻으로 사용된다. 신병이 자대 배치를 받아 내무반에 처음 들어와 보고 싶은 드라마를 봐도 되느냐고 물으면 바로 고문관으로 낙인 찍힌다. 지난 주말 모 방송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선 개그우먼 맹승지가 '구멍 병사' 샘 해밍턴, '군대 무식자' 헨리에 이어 '고문관'으로 등극했다. 배꼽티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훈련소에 입소한 뒤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오락 프로그램은 희화화가 가능하지만 현실은 참혹하다. 이른바 '보호 관심'을 요하는 병사가 군 전체 병력의 23%를 넘는다.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복무 기한을 못 채우고 전역하는 군인이 매년 4,000여 명에 달한다. 한 해 120명 안팎의 병사들이 숨지고 이 중 약 70%는 자살이다. 사건 발생 시 군 당국이 취하는 대응방식은 은폐, 축소가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뿌리 깊은 폐쇄성이 부조리를 키웠다.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지난 25일 첫 전체회의를 열었다. 이날 구타와 가혹행위, 폭언·욕설, 집단따돌림, 성군기 위반, 고충차단 행위를 5대 반인권행위로 규정하고 가혹행위자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등 처벌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이 나왔다고 한다. 약자도 함께 배려하는 군 문화가 조성될 때 우리 군대는 '진짜 사나이'들로 뭉친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 병사는 소모품이 아니다.

김석만논설위원·smkim@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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