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복지의 환상

춘추시대 정나라 재상 자산은 강에 발이 묶인 백성을 보곤 수레에 태워 건너게 해준다. 이에 맹자는 꾸짖는다. “은혜롭지만 정치가의 일은 아니다”라고. 정치가라면 촌음을 아껴 다리 놓는 일부터 헤아리라는 거다. 근본해결이 아닌 포퓰리즘적 대처에 대한 호된 질책이었다.

▼기록상 서양에서 포퓰리즘이 등장한 건 로마시대 때다. 기원전 2세기 호민관이던 그라쿠스 형제는 시민에게 땅을 나눠주고 옥수수도 시가보다 싸게 판다. 개혁을 위한 지지 확보 차원이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독재자가 되려 한다며 이들을 사형시킨다.

▼이런 비극적 출발에도 포퓰리즘은 시공을 초월해 퍼져 나갔다. 압권은 1940~1950년대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 전 대통령 부부가 펼친 정책이다. 페론은 국토의 3분의 1을 몰수해 서민들에게 나눠줬다. 의적을 흉내 낸 '로빈후드 포퓰리즘'이었다. 지방분권을 돕는다며 TV공장을 수도에서 3,000㎞ 떨어진 남극에 세웠다. 부인 에바는 빈자를 돕는다고 트럭 가득 돈을 싣고 다니며 뿌려댔다. 국가재정이 거덜 날 수밖에 없었다. '토끼도 자기 둥지 주변의 풀은 뜯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되도록 멀리 나가서 먹는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지혜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눈에 보이는, 손쉬운 풀만 골라 뜯는 느낌이다. 거리에 촛불만 나오면 반값 등록금, 아이들 체면을 생각해 무상급식을 외친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다. 요즘 '증세 없는 복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복지 구조조정과 증세 이슈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야는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법인세율 유지와 인상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복지정책이 어디서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돼 가고 있는지 짚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근사한 명분이라도,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결정은 반드시 화(禍)를 부르게 마련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모두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고 했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