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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뿔난 황혼 남편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옷섶이 한때 이혼증서였다. 부부의 한쪽이 옷섶을 잘라 상대방에게 주면 그날로 혼인 관계가 막을 내린다. 본래 옷섶은 옷 앞부분이 벌어지지 않게 여미는 역할을 한다. 서로 겹쳐져야 할 겉섶과 안섶 중에 한쪽을 잘라냄으로써 서로 붙어 있어야 할 부부가 갈라서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물론 이혼이 엄격히 통제됐던 양반들은 꿈도 못 꿀 얘기다. 평민과 천민 사회에서 유행했던 풍습인 모양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옷섶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30년 이상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헤어질 것을 먼저 요구하는 남성 주도의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집안의 가장으로 모든 걸 희생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내 삶을 살겠다”는 '황혼 남편들'의 반란이다. 혼인 기간이 3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2004년 4,600여 건, 2009년 7,200여 건, 지난해 1만300여 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 남성의 '이혼 후 재혼'이 2000년 364건에서 지난해 1,969건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60대 이상 남성의 이혼 상담 건수도 2004년 45건에서 지난해 373건으로 10년 새 8.3배가 됐다. 같은 기간 60대 이상 여성 상담 건수가 3.7배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일흔세 살 남편은 25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치매에 걸렸다. 부모 자식도 기억 못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내만은 알아본다. 일흔두 살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간병 일지를 쓰며 지성으로 수발한 덕분이다. 부부는 늘 손을 꼭 붙잡고 다닌다. 2013년 어느 방송사 다큐프로그램에서 본 노()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부부 사랑은 추억을 더듬고 서로 공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속담에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고 했다.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는 얘기도 있다. 탈무드에 '아내의 키가 작으면 남편이 키를 낮추라'고 했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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