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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뻘 군인 선생님 덕분에 평생 소원 한글 깨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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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나눔·기부 캠페인]육군 2사단 장병들, 양구 박수근마을에 재능기부

◇육군 2사단 장병들이 박수근마을 주민들에게 한글 교육을 하고 있다.

“군인 선생님들 덕분에 평생 소원이던 한글을 배우니 세상이 환해진 것 같아요.”

양구군 양구읍 정림1리 박수근마을. 요즘 마을 어르신들은 군인 선생님들과 함께 한글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한글 교실은 박수근 마을 함만흥(54)이장이 평소 마을회관을 자주 찾는 고현수 육군 2사단장에게 “일부 어르신들이 한글을 배우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부대에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고 사단장은 곧 바로 고려대 건축토목과 출신의 공병대대 한상욱 중위, 공병대대 모범용사인 장도일 상병,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입대한 의무대 황용택 일병을 선발해 한글 강의를 맡겼다.

지난달 17일 오후 첫 수업이 시작됐다. 70대 중반 이상인 마을 어르신 7명이 군인 선생님들로부터 한글의 자음 모음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생활단어를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어르신들은 오는 3월14일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통해 생활 문장 읽고 쓰기를 배우게 되며 마지막 수업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계획이다. 평생 한글을 몰라 답답하고 억장이 무너질 때가 많았던 어르신들은 손자뻘인 군인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에 한글을 알게 되면서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고 자식들에게 편지 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글을 배우고 있는 한용덕(78) 할머니는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선생님들이 열심히 가르쳐 줘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한글을 잘 배워서 좀 있으면 태어날 증손주 잘 키우라고 손자에게 편지를 써 볼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수발하면서 틈날때마다 달력으로 만든 이면지에 한글을 쓰고 있는 한용덕 할머니 집 거실 한구석에는 한글이 쓰여진 이면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한상욱 중위는 “어머니들이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초가 부족해 힘들어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못지않은 열정으로 숙제도 내 준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을 꼬박꼬박 해 오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며 “수업이 끝날 때마다 잘 가르쳐 줘 고맙다며 배꼽 인사를 하면서 손을 꼬옥 잡아주실 때에는 울컥하는 감정이 생기면서 오히려 제가 고마움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을 부녀회원들은 수업이 끝나면 소면과 만둣국 등을 간식으로 만들어 오기도 해 어르신들의 한글교실에는 사랑과 웃음이 넘쳐난다. 함만흥 이장은 “겨울철 내내 눈만 내리면 장병들이 마을 길과 도로, 인도 제설작업을 해 줘 너무 고마웠는데 어르신들 한글까지 가르쳐 줘 정말 감사하다”며 “2사단과 박수근마을이 사랑과 나눔의 동행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구=심은석기자 hsi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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