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新강원기행](178) 춘천시 효자1동 낭만골목

골목이 예술이다

◇춘천시 효자1동 낭만골목 조형물과 벽화들. 박승선기자 lyano@kwnews.co.kr

조선 반희언이란 孝子서 마을 유래

원래 이씨문종묘 있던 야트막한 야산

축제극장 몸짓·담작은도서관 등

문화적 인프라 잘 갖춰져 있어

익살맞은 호랑이가 반겨주고

효자손 든 정크로봇이 인사하네

반바지 입은 로보트태권V 유쾌하게

낭만골목 프로젝트로 웃음꽃 '활짝'

조선 중기인 1554년 출생한 반희언이란 효자가 있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반처량 장군의 아들이었다. 그는 홀로 된 노모의 병환이 깊자, 지극정성으로 모셨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대룡산에 가면 시체 5구가 있는데, 목을 잘라 고아 드리면 병이 낫는다고 했다. 꺼림칙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밤중 어렵사리 실행에 옮겼다. 다음날 솥을 열어보았더니, 그게 다름아닌 산삼이었다. 조선 선조 41년인 1608년 반희언의 효행에 효자정려가 내려진 줄거리이다.

당시 현 춘천우체국 부근에 효자정문이 세워졌고, 이후 효자문거리라 불렸으며, 현재의 효자동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근래에 문화예술회관 뒤편 작은 공원에는 동으로 제작된 효자상이 세워져 있다. 반희언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어머니의 손에는 산삼이 쥐어진 형상이다. 그 효자상이 후세에 동네에서 더 많은 효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클래식한 조형물이라면, 2012년은 효자마을의 설화를 모태로 예술성과 낭만을 가미했다. 그 골목 어딘가에서 반희언과 호랑이의 조형물을 만나고, 벽화를 감상하고, 자투리 텃밭과 담벼락 위에서 정크로봇과 로보트태권V를 조우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춘천시 효자1동은 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남부사거리에서부터 춘천 수협, 별당막국수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효자동은 강원대 인근 부지까지 아우르는 큰 행정구역이었지만, 2동과 3동이 떨어져 나갔다. 효자1동 효자문마을의 중심지인 문화예술회관 일대 자리는 원래 이씨문중묘가 있던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국전쟁 뒤 피란민들이 하나둘씩 산에 하꼬방(판잣집)을 짓고 들어섰고, 이후 문화예술회관이 입지하면서 현 형태를 보이고 있다. 마을은 문화예술회관뿐만 아니라 축제극장 몸짓, 전국에서도 유명한 사립도서관인 담작은도서관 등이 입지하면서 어느 마을보다 문화적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 낭만골목 프로젝트는 '생활문화공동체' 복원이다

낭만골목 프로젝트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3년차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시문화재단, 동네방네, 낭만골목추진위원회 등이 주관한다. 2억원 남짓한 예산으로 예술문화 인프라에서부터 주민들간 교육 커뮤니티, 마을 리더, 마을기업 육성 등을 통해 온전히 생활문화공동체 복원을 이끈다.

마을 귀퉁이 어느 한 곳에 벽화 몇 점 그린다 해서, 낭만스러운 골목이 되진 않는다. 마치 그것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낭만은 집 담벼락이 아니라, 집 안에서 싹트고, 그 온정이 서로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집으로, 또 그 이웃집으로 번지면서 효자마을의 '생활문화공동체'를 꾸리는게 목표다. 마을기업이니, 어려운 말을 쓸 필요도 없다. 결국은 우리 사는 공동체의 복원이다. 앞집 뒷집의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다 아는 시골마을만 마을공동체가 있는 건 아니다. 인구 27만 도시의 1,600여세대 3,700여명 주민의 효자1동에서도 가능한 시도다. 이를 위해서 마을은 지난해 주민교육을, 올해는 마을 리더 및 문화활동가 발굴 사업 등을 벌인다. 우선 지난해 매주 동주민센터에서 열린 도자기나 리폼공작소 강좌를 함께 들으며 모르던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조금씩 알아갔다. 둥구미 장터라 해서 낭만골목에 참여했던 예술가와 주민들이 간이장에서 물건을 팔고, 음식을 함께 나누며 이웃의 정을 쌓아갔다.

효자1동 노인들이 모이는 효자문 경로당에 가면, 손수 만든 작은 화분이나 크레파스로 색칠해 만든 시계 등이 유독 많이 걸려있는 것도 리폼공작 교육 덕택이다.

낭만골목을 통한 또 다른 변화 중 하나는 동주민센터 앞 2층의 카페, '복덕방'에 있다. 효자1동주민자치위원장인 김운배(72)씨의 개인회사 사무실이었는데, 마을 주민들의 미팅장소겸해서 리모델링해 카페로 문을 열었다. 또 효자1동 주민들이 기획하는 또 다른 변화는 '효자마을대학'이다. 고학력이 아니더라도 주민들이 학장이 되고, 교수가 되고, 동시에 학생이 될 수 있다. 청주 수암골 등 유명 마을을 벤치마킹하고, 마을 공동체에 대해 교육 등도 진행한다.

△ 낭만골목에는 예술이 살아 있다

효자1동 신동아아파트 부근. 그린마트에서부터 낭만골목은 시작된다. 반희언이 기쁜 듯 어머니에게 드릴 산삼을 든 채 서 있고, 그 옆에 선 호랑이는 딸기를 베어 물고 앙증맞은 표정을 하고 있다. 바로 앞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콘크리트 담벼락에 길이 약 10m의 호랑이 그림이 있다. 익살맞은 표정의 호랑이 얼굴 주변에는 낭만골목이라는 이름과 주택들이 있고, 비현실적으로 길게 그려진 등 위로는 토끼며 쥐, 원숭이, 돼지 등 12지신에 나오는 동물들이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 박선옥 작가는 이 벽화에 대해 '사람꽃 웃음꽃, 행복노래로 가득한 효자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과 낭만골목 방문객을 환영하는 의미'라고 작품설명서에 적고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의 오르막길로 접어들면, 2008년 문을 연 담작은도서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국의 사립도서관 가운데 손에 꼽힐 정도로 이름이 나 있다. 2006년 원자력발전소 연구원이던 김태윤(46)씨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좋은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실현한 도서관이다. 이 작은도서관의 회원만 1만명이 넘는다. 시작점으로 다시 내려가 호랑이 벽화에서 왼쪽 길로 가면, 의료기기와 믹서기 등 버려진 폐품을 조합해 만든 정크로봇을 볼 수 있다. 울타리 꼭대기에는 전기설비로 만든 깜찍한 애벌레가 있고, 망원경으로 마을을 감시하는 보안관을 닮은 로봇이 있다.

또 신동아아파트 뒤편의 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이상규(72)씨의 울타리 밑 정원이, 반대편에는 오정권(73)씨의 작은 텃밭이 있다. 삭막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빛을 발하는 곳이다.

이 삼거리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가려운 등을 박박 긁어줄 것 같은 효자손을 든 정크로봇이, 건너편에는 V자 모양의 나무를 깎고 색칠까지 한 그럴듯한 로보트태권V가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만화 주인공이지만, 효자마을에서는 반바지를 입고 서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이 돼버렸다. 일상의 유쾌한 반전인 셈이다.

사실 낭만골목 벽화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5월 봄날, 집주인 이 씨가 40년 가까이 효자동 마을에 살면서 가꿔온 길 옆 좁다란 정원과 지난해 그려진 벽화와의 조화에 있다. 하얀색 바탕 위로 크고 작은 집들이 들어서있고, 초록색 나무, 또 그 위로는 파란 하늘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멀리서 아름다운 마을을 조망한 풍경화가 아래로는, 이씨가 가꾼 감나무 후박나무 주목 백매화 적매화나무가 있고, 입목 사이로는 붓꽃과 금낭화 장미 등이 빼곡히 차있다. 울타리 옆 정원과 벽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어울림이다. 효자1동 효자문마을의 봄은 그렇게 싱그러우면서 은은했다.

류재일기자cool@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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