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사용 금지된 `그라목손' 여전히 음독 자살로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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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죽음의 농약' <1> 고독성 농약 퇴출 후에도 암암리 유통

일부 농약상 재고분 팔아 "일주일에 10명 이상 꼭 찾아"

올 상반기 도내 불법 유통 5곳 적발…실제는 더 많을 듯

지난주에도 40대女 숨져…올들어 농약 등 음독 사망 84명

지난주 춘천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40대 여성이 이송됐다. 자신의 집 욕실에서 음독을 한 이 여성은 고통에 몸부림쳤고 의료진 역시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여성은 음독 하루만인 지난달 28일 숨졌고 경찰조사결과 이미 지난해 판매 보관이 중단된 그라목손을 마신 것으로 드러났다.

'죽음의 농약', '녹색악마'로 불리는 그라목손 등 파라콰트 성분의 고독성 농약은 지난해 10월부터 생산 판매는 물론 보관이 모두 중단됐다.

뛰어난 제초효과와는 별개로 2010년에만 3,206명이 그라목손 음독으로 숨지는 등 자살수단으로 악용됐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파라콰트 성분 제초제 11개, 디클로르보스 유제 등 고독성 농약 9개가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됐다. 그러나 농약 피해사례는 계속 발생하고 있고 일부 농약상에서는 고독성 농약 재고분을 암암리에 판매하고 있다.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도내에서 농약 등 음독으로 인한 사망자는 84명이었다.

고독성 농약이 농약사에서 버젓이 팔리던 지난해 사망자 162명과 비슷한 추세다. 음독사고로 인한 사망자의 90% 이상은 그라목손 등의 농약이고 쥐약 음독이 극히 일부 있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농약의 관리체계도 부실하다. 농촌진흥청이 올 상반기 전국의 농약유통 실태를 일제단속한 결과 도내에선 5곳의 농약사가 이미 제품등록기간이 끝났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농약을 판매하다 적발됐다.

또 2곳은 농약 판매시 구비해야 할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않기도 했다.

전국에서 제초제 수요가 가장 많은 호남에선 그라목손을 보관하고 있던 농약사 2곳이 적발되기까지 했다.

농가의 보관분을 일일이 단속할 수 없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유통량은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도 농축산식품국 관계자는 “농약의 내용물을 일일이 시료채취할 수 없는 단속여건을 고려하면 판매 중지된 고독성 농약을 분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판매 중단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고독성 농약을 꾸준히 찾고 있어 농약사들이 판매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춘천의 한 농약사 관계자는 “그라목손을 달라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10명 이상은 꼭 있다”며 “판매가 중단됐다고 설명하면 싸고 그만큼 효과가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느냐며 아쉬워 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고 했다.

전문의들은 고독성 농약이 농민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경고하고 있다.

조준휘 강원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그라목손과 같은 고독성 농약은 피부를 통해 흡수되며 실제 상처가 난 곳에 그라목손이 닿아 사망한 경우도 있다”면서 “시중의 일반농약의 음독 시 치사율은 1% 미만으로 사망에 이르는 대부분의 경우는 고독성농약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최기영·박진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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