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촌각 다투는 비상 상황, 구조선 출동 준비에만 30분

긴급점검=강원도 안전한가 <3>수난구조체계 유명무실

춘천 소양강댐의 소방선, 경찰선, 행정선이 정박된 바지선 진입로가 위험천만한 철제 구조물과 20~30m 절벽 위를 통과해야만 접근 가능해 수난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권태명기자

23일 오전 춘천시 신북읍 소양강댐 소양호 선착장. 70~90인승의 각종 유도선 옆으로 4~6인용 행정선과 경찰선, 소방선이 바지선에 정박한 채로 '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 '구조선'을 운행할 선장들은 119수난구조대를 제외하면 승용차로 20분 내외 떨어진 춘천시청과 경찰서, 파출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소양호 행정선·경찰선 선장 도심 관공서에서 근무

구조선 진입 시설물도 불법 철제 가설물 '위험천만'

800쪽 분량 '안전관리계획' 수난사고는 1줄도 없어

상황 발생 시 행정구역에 묶여 지자체 간 협업 안 돼

■구조선 진입로는 불법 시설물

아연실색할 상황은 따로 있었다. 촌각을 다툴 비상 상황에서 이들 공공기관의 선박이 출동하려면 높이 20~30m의 절벽 난간에 10여년 전 만들어 시뻘겋게 녹슨 철제 가설물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노후화가 심해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다. 더욱이 이 시설물은 건축물 대장에도 없는 '불법 시설물'로 확인됐다.

소방서 관계자는 “수난구조대가 있는 곳까지 20~30m 절벽을 기어 내려가야 돼 2000년대 초 임시로 철제 가설물 계단을 만들었는데 이제까지 쓰고 있다”고 했다. 시청, 소방서, 경찰도 수난 구조를 나가려면 '불법 시설물'을 이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선, 행정선이 있는 바지선으로 가려면 철제 계단 중간쯤에서 다시 폭 30~40㎝의 절벽 난간을 20~30m가량 지나가야 했다. 도내에서 그나마 수난구조시스템이 갖춰졌다는 동양 최대 사력댐인 소양강댐, 소양호의 현주소다. 관계 기관의 '안전불감증'이 이 정도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다.

■상황별 시나리오 전무

진도 여객선 침몰 같은 대형 사건이 소양호나 남이섬이 있는 청평호 등 내수면에서 발생하면 지자체나 경찰서, 소방서 등 관계 기관의 대처는 허둥지둥할 게 뻔했다.

관계 기관의 현 재난 대응 매뉴얼을 종합하면 상식 밖의 '공무원 다운' 발상이 적지 않다. 소방구조의 경우 남이섬이 있는 청평호에서 상황이 일어나면 우선 사건 발생 위치를 확인한다. 행정구역에 따라 '가평소방서', 또는 승용차로 20~30분이 더 소요되는 '춘천소방서'에서 처리할지를 결정한다. 행정구역에 꽁꽁 묶여있는 셈이다.

춘천시 등 지자체가 매년 발간하는 700~800쪽에 이르는 '안전관리계획' 역시 '교과서' 수준이다. 풍수해, 설해, 가뭄, 황사, 지진, 폭염 등 12가지 재난상황을 분류하는데 정작 수난사고는 없고, 유도선 안전관리 계획만 있을 뿐이다. 춘천시 관계자는 “이 재난관리 매뉴얼에는 지역의 포클레인 장비 현황까지 있지만 수난사고 시 가용할 크레인이나 어선, 잠수부 현황 등 관련 정보는 없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난 상황별 가상 시나리오는 '꿈 같은 얘기'다.

■지자체, 부서 간 협업 미비

지자체 간 협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양호의 경우 70인승 19톤급 도선이 춘천을 출발해 양구에 거의 다 가서 상황이 발생하면, 양구군에는 '행정선'이 없어 춘천에서 30분을 달려 현장에 가야 한다. 그렇더라도 춘천시의 안전관리계획에는 소양호 권역 내 양구, 인제 등 인근 지자체의 재난부서 연락처도 수록돼 있지 않았다. 광역이 다른 경기도 가평군과의 협조는 더욱 힘들다.

진도 여객선 침몰 사건 다음날인 지난 17일 가평군이 춘천시에 양 지자체 간 재난 대비 '협약'이라도 맺자고 나온 이유다. 또 수자원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KT 등 30~40개의 유관기관이 있지만 총무과 지원과 등의 부서 전화번호만 수록돼 있는 정도다.

책임자 휴대전화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신속한 상황 전파나 협조가 애초부터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수난구조 상황 시 경찰의 역할도 불분명하다. 지자체의 재난관리 매뉴얼에는 소방서와 달리 경찰의 역할을 찾아보기 어렵다. 춘천의 경우 의암호와 소양호에 경찰선이 배치돼 있는 정도다. 한 선박 관계자는 “소양호에서 경찰선이 운행되는 건 1년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했다.

3톤급의 의암호 순찰용 101호는 1991년 건조돼 무려 23년이 지났다. 춘천경찰서 측은 “올 하반기에 순찰정을 새 것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자체에 방재전문가가 없다= '중구난방'식의 지자체 지휘 체계도 논란이다. 자연재난의 현장 통제관은 건설국장이지만 사회재난일 때는 안전행정국장으로 이원화돼 있다.

현 정부 들어 '안전'이 강조되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업무지원 부서가 지휘를 한다는 것인데 선뜻 이해가 되지 않고, 상황이 벌어졌는데 자연이냐 사회냐 구분이 쉽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수난 업무의 경우 유도선 관리는 건설국에서 맡지만 어업을 목적으로 하는 어선 관리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담당해 선박 관리 업무가 나눠져 있다.

전문가들은 더 큰 문제는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할 '인력'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자체 순환 보직으로 2~3년마다 담당자가 바뀌면서 방재 전문가는 고사하고 '매뉴얼'이 어디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까지 왕왕 일어난다. 재난관리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 소신이나 철학도 찾아보기 힘들다.

백민호 강원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상황별 시나리오 등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건 그렇게 잘 만들어진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할 인적 자원”이라며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지자체에 방재안전직렬을 뽑을 수 있도록 했지만 충남도 등 일부 지역에서 시작했을 뿐이고 도내에서는 아직 도입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멀리 보고 방재 전문가를 육성해야 '세이프 코리아'도, '세이프 강원도'도 완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류재일·강경모·이지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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