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전문의 칼럼]의학 교육의 혁명 `플렉스너 보고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 의학계와 의과 대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의사들은 면허 체계가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종 요법사나 약초 요법사와 같은 비정규 의료인들과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또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과대학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함량 미달의 의사들이 마구잡이로 배출되고 있었다. 이에 미국의사협회는 의과대학의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1904년에 의학교육위원회를 설치하고 카네기 교육진흥재단에 전국적인 규모의 조사를 의뢰하게 되는데, 이 조사를 맡게 된 사람이 존스 홉킨스 대학 출신의 교육가인 플렉스너(1866~1959년)이다.

플렉스너는 미 전역의 의과대학을 시찰하고 나서 1910년에 '미국과 캐나다의 의학 교육'이라는 그 유명한 '플렉스너 보고서'를 발표한다. 플렉스너는 이 보고서를 통해 많은 의과대학이 기준 미달의 시설과 인력, 재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음을 폭로했다.

플렉스너는 과학에 기반을 둔 의학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 의과 대학 개혁의 핵심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의과대학은 제대로 된 실험시설과 연구진을 갖추어야만 하고, 의과 대학생들은 임상 의사일 뿐만 아니라 기초과학자로 육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플렉스너 보고서가 발표되자 많은 의과대학과 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보고서가 발표되고 10년 내에 기준 미달의 의과 대학 46개가 폐교됐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은 과학으로 무장한 의사들의 권위를 세우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고, 결국 미국 의학의 전문가 지배 현상이 확립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플렉스너 보고서의 유산은 현재 한국의 의과대학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 우리 의과대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플렉스너 보고서에 의해 확립된 현대 의학의 시스템은 여러 가지 부작용도 낳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의사들에게 기초과학을 강조한 나머지 환자로부터 의사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플렉스너 보고서가 발표될 당시부터 이미 있어왔다. 환자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연구의 대상, 이윤의 대상으로만 보려는 세태를 개탄하는 임상가들은 플렉스너 보고서가 현대 의학에 미치게 될 부정적 영향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래의 의학 세대들은 플렉스너가 남겨놓은 긍정적인 유산은 잘 보존하되, 그 부정적인 유산은 과감히 도려내어 '새로운 플렉스너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황임경 교수

춘천성심병원 영상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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