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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라이프]“환자 자신의 안전 위해 의사가 하는 말 메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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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존스홉킨스대학 환자안전 분야 연구원 정헌재 박사(춘천 출신)

여러명의 전문 의료인력 투입되며

정보 공유 부족으로 '틈' 발생

'틈' 메우는 것은 환자의 몫

모든 의료진에 이름·나이 밝히고

증상 같다고 남의 약 먹지 말고

주사 놓는 간호사에 말 걸지 말아라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됐죠?”

“아… 조금 됐습니다.”

병원에서 처음 대면한 주치의와 환자간의 가장 흔한 대화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는 대략 1~2분간 증상 병력은 물론 향후 치료계획, 주의점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이 짧은 진료시간 동안 환자는 자신이 과거 앓았거나 현재 앓고 있는 병의 증세, 최근 복용했던 약 등 되도록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고 의사는 적절한 처방을 내린다. 그러나 의사의 말을 모두 기억하기란 불가능하고 환자가 의사의 말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환자에겐 짧은 진료시간이 아쉽지만 만약 환자 1인당 진료시간을 10분 이상으로 늘린다면 수많은 대기환자가 발생해 몇 달을 기다려야 의사를 한 번 만날 수 있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환자가 단순히 치료를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료진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적극적인 '팀원'이 될 수 있다면 보다 효율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안전은 환자 스스로 지키는 것

'더 안전한 병원을 만들고자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는 의학', 이른바 환자안전은 최근 의학계의 최대 화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0년대 들어 의료안전과 질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환자 안전 분야 연구원인 정헌재 (36·춘천 출신)박사는 WHO의 환자안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 세계에서 선발한 5명의 환자 안전 전문가(Patient Safety Scholar)다.

그는 최근 환자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의무, 역할을 담은 책 '병원사용설명서'를 펴냈다. 출간 후 강원일보를 방문한 그는 현대의 병원에서는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과 함께 병원 안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림대 의대를 졸업한 후 강원도청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던 정 박사는 2005년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존스홉킨스 글로벌 리더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선발됐다. 그러나 부친이 그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2006년 여름 숨을 거뒀다. 11개월간 병원에서 보호자 역할을 했던 그는 의사임에도 도대체 무슨 검사를 받아야만 하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미로 속에 혼자 남겨진 듯한 좌절과 혼란을 느껴야 했다.

다행히 존스홉킨스에선 그를 기다려줬고 연구와 강의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환자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과 누구도 환자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대 병원에서 생기는 틈

동의보감을 편찬한 조선시대 명의 허준은 혼자 부러진 뼈를 맞추고 폐렴을 치료하고 스스로 약초를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의 병원은 의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달로 수십 개의 진료과와 전문 분야가 생겼다. 전문성이 강화됐지만 환자 한명을 치료하는 데도 여러명의 전문 의료인력이 투입되며 정보공유의 부족으로 인한 미세한 틈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틈을 메우기 위한 방어벽을 만들기 위해선 병원과 의료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인 환자가 입원해 있는 한 병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이동식 용변기와 같은 생필품을 최대한 환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 두게 한다. 간호사를 부르는 것이 미안해 침대 근처에 생필품을 둔 환자가 혼자 그것을 잡으려다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낙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병을 온 보호자가 생필품을 침대 곁에 두는 것이 좋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면 환자는 다시 낙상의 위험에 노출된다.

■반드시 알아둬야 할 수칙

짧은 진료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의사가 하는 말을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자주 보는 의사와 간호사라도 자신의 나이와 이름 등을 반복해 알려야 한다. 병원에선 이름이 같은 환자가 의외로 많기 때문에 자신의 검사·수술·약 처방 등을 다른 환자와 혼동할 가능성도 있다. 간호사나 의사가 계속 이름을 묻더라도 본인의 안전을 위한 것인 만큼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약 또한 겉에 적힌 이름과 나이를 꼭 확인해야 한다. 약의 용량 역시 사람마다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조제한 약이 아니라면 무조건 먹어선 안된다.

궁금한 것이 많더라도 약을 나눠주거나 주사를 놓는 간호사에겐 말을 걸지 말자. 약물 투여 순간 주의가 흐트러질 수 있다.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간호사의 처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최기영기자 answer07@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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