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있을 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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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영 원주주재 차장

대한민국 최고의 막장 드라마라고도 불리는 드라마를 얼마 전 봤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내용에 차마 끝까지는 못봤다. 여러 커플이 나오는데 그중 누구나 부러워하는 만점짜리 부부. 하지만 남편의 불륜으로 가정이 깨진다. 새로운 여자가 곁에 있는데도 떠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후회하던 남편의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있을 때 잘하지...''.

대부분 이렇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사라진 후 불편함과 아쉬움을 느끼며 후회한다. 우유를 생산하던 삼양식품 원주 문막공장이 올해 초 문을 닫았다. 한때 도내 학교 90%에 우유를 납품했지만 2010년 이후 조사에서는 7%까지 떨어지는 등 급감했다. 도내 향토기업 우유가 정작 학교 급식 현장에서 외면받았다. 적자가 누적됐다.

대한민국 최초 펌프제조 기업인 한일전기의 원주 우산동 본사 및 공장도 세종으로 옮겨 간다. 내년 6, 7월까지만 원주 본사 및 공장을 유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대표 향토기업인 만큼 한일전기 세종행은 지역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향토기업이 하나둘 사라지는 원주. 기업이 사라지면 일자리도, 지방세수도 사라진다. 기업을 탓할 수만은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시설을 집약하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서는 게 당연하다. 그동안 향토기업의 목소리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계속 신호를 보냈는데 괜찮을 거라고 안일한 마음이 모른 척한 결과인 터라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몇 년 전 원주시장이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한일전기를 방문했던 자리에서 기업 측은 원주공장의 경우 300여명이 근무 중이고 지난해에만 1,76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며 관심을 당부한 바 있다. 당시 한일전기 대표이사는 “원주는 본사가 있음에도 세종공장이 있는 세종보다 한일전기 제품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아쉬울 때가 많다. 원주시도 청사 물품 구입 시 향토기업 제품을 애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주시장은 흔쾌히 약속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향토기업들의 한숨은 여전했다. 지난달 원주상공회의소 회원사들과 원주시장 간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도 향토기업은 지역에 대한 서운함을 표출했다. 삼양식품 원주공장 생산본부장은 “타 지역보다 유독 원주에서 삼양라면 판매량이 저조하다. 라면 한 박스를 출하할 때마다 400원씩 천사기금을 적립해 지역에 기부하는데 원주에서 라면이 잘 안 팔려 지난해 적립기금이 1,000만원을 넘지 못했다. 시민들이 지역 제품을 애용해야 향토기업도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내용까지 ‘Ctrl+C(복사), Ctrl+V(붙여넣기)''다. 수년이 지나도 문제가 여전하다는 것은 해결 의지의 부재를 의심케 한다. 이번에도 역시 원주시장은 향토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선 8기 원주시정이 내세운 핵심 목표는 경제 살리기다. 새로운 기업을 데리고 오는 것도 좋지만 있는 기업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매번 반복된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보여주기식 약속에 그칠지, 이번에는 다를지 주목된다.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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