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22 만해축전 전국고교생 백일장 수상작]대상 국무총리상 - 한 뼘의 용량은 18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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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영(석정여고 3학년)

누군가 씹은 자국이 남은 종이컵

몰래 초조함을 새긴 것은 엄마였는지

그늘 밑 식물처럼 마른 몸집을

다시 부풀리기 위해

엄마는 하루치 물을 정해놓았다

계량할 때 쓰는 종이컵은 한 뼘 크기

엄마가 내게 두는 거리 같았다

나한테서 자기를 찾을 수 없어

나와 마주하지 않는다던 엄마

곰팡이가 핀 것도 아니면서

눅눅한 표정이 담긴 얼굴이었다

종이컵은 남은 물을 한입에 욱여넣고

엄마의 얼굴을 닮아가는데

부엌에서는 하루치 물이 새고 있었다

다른 뿌리가 채간 수분을 보는 듯했다

엄마의 뼈대가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이유

밀면 벗겨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엄마는 씹을 때 소리가 나지 않아 좋다며

한 뼘 빠듯하게 종이컵을 쥐었다

하지만 우는 종이는 쉽게 숨죽이잖아

종이컵 하나를 넘지 못했다

내 얼굴에 곰팡이라도 폈으면 했다

울음소리를 벗겨내기도 전에

짜글한 주름 따라 구부러지는 물방울

엄마의 입술에는 건조하게 마른

잇자국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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