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횡성별곡(別曲)’ 김명기 군수가 해야 할 3가지

유학렬 횡성주재 부국장

정치과잉 공직사회 체질 개혁

외지에서 와 군림하려는 풍토

민간과 다른 공공 특수성 명심

치열했던 군수 선거를 치르고 민선 8기 김명기 횡성군정이 출범한지도 벌써 두달이 다 됐다.

490표로 당락이 갈린 군수 선거는 초박빙이었다. 하얗게 밤을 세운 개표는 동틀 무렵에야 끝났다.

우천에서 태어나 초·중을 다닌 ‘학생 김명기’는 횡성고 전신인 횡성실업고 잠업(蠶業:누에를 치는 일)과에 진학했다. 가난의 굴레에 학비를 절약할 수 있는 잠업과에 다니며 1등을 독차지해 ‘수재’로 불렸다.

‘될성 부른 떡잎’은 농협중앙회에 들어가기 위해 고교 상업과 전공자들도 어렵다는 입사 시험 과목을 ‘어깨 너머’로 배워 졸업과 동시에 1970년 2월 농협인이 됐다.

‘직장인 김명기’는 취업 후 자리가 잡히자 학업을 다시 시작해 1979년부터 방송대 경영학 학사, 강원대 경영행정대학원 경영학 석·박사를 땄다. 직장에서는 열정만큼 성과를 거둬 2007년 농협중앙회 강원지역본부장, 2008년 농협중앙회 상무, 2011년 농협정보시스템 대표 이사로 43년여간 한 우물을 팠다.

가난한 시골 출신 고졸 신입 직원이 9만여명 거대 조직에서 서열 15위안에 드는 전문 경영인으로 거듭났다.

‘퇴직자 김명기’는 어린 시절 가난의 한(恨)과 직업인으로서 성공을 가슴에 안고 고향에 돌아왔다.

가난을 떨치고 부자 횡성을 만들겠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지 10여년만에 군민의 대표가 됐다.

‘군수 김명기’는 역대 민선 단체장들과 다른 인생 행로를 걸어 왔다.

자신의 표현처럼 ‘지방자치제도 28년만에 첫 비공무원 출신 횡성군수’이다.

출근 첫날 간부공무원들과 상견례 자리에서 김 군수는 “도청가서 6개월, 1년 근무하고 돌아와 승진하고, 부군수나 한번 하고 퇴직하는 게 공무원의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 “기회되면 도청도 가고, 중앙부처도 가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고향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 진정 공무원 아니냐?”고 되뇌었다. 자신의 인생 경로를 투영한 표현이다.

김 군수는 공무원들에게 ‘빚’이 없다. 신세진 게 없다. 냉정하고 과감할 수 있다. 큰 조직을 꿰뚫어보던 혜안으로 공직사회를 살펴야 한다.

공무원 조직은 정치 과잉이다. 승진에 목멘 공무원이 너무 많다. 군수만 바뀌면 줄대기에 급급하고 이런저런 연줄과 친분을 떠벌이며 자신을 포장하기 바쁜 기회주의자들의 야단법석에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상당수 공무원들의 한숨과 냉소는 가려진다. 세상이 다 그런거라는 합리화까지 서슴치 않는다. 꿈을 갖고 능력을 쌓고 있는 재목을 발굴하고 길러야 한다. 누가 아첨꾼이고 누가 군수 머리위에서 놀려고 하는지 잘 헤아려야 한다.

지역 사회로 눈을 돌려 본다.

고향을 떠나 성공한 후 다시 돌아온 김 군수이기에 상황에 대한 이해가 너무 정확할 것이다. 횡성에 태를 묻었다는 것만 빼면 오랜 외지 생활에서 터득한 객관적인 시각이 있을테니 말이다.
낯선 횡성에 들어와 지역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횡성사람들을 깔보고, 이간질과 해악질을 일삼는 부류는 멀리해야 한다. 조용히 정착해 이웃들과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토박이보다 더 지역을 사랑하고 헌신, 봉사하는 진짜들을 챙겨야 한다.

고립이나 단절이 아니다. 올바른 관계 형성과 정립이 중요하다. 외지에서 왔다고 떠받들어 모셔야 하는 존재는 없다.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조상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들의 희생과 양보만 요구하는 행태는 근절돼야 한다. 갈등과 반목은 대등한 입장일때 말하는 것이고, 함량 미달 부류들은 발붙이지 못해야 한다.

이들 2가지를 확실히 수행하려면 주변 관리가 우선이다.
민간 영역에서 아주 잘 하는 수범 사례로 꼽힐 가족, 지인들의 내조와 도움이 공공 영역에서는 종종 비선 논란 혹은 비리로 비춰져 개혁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개인 김명기’ 성공이 ‘횡성의 그것’이 되길 기대한다.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