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 불평등, '중앙집권형' 보건정책
코로나19 이전 발생한 지역간 건강 격차와 불평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해결을 위해서는 중앙정부 중심의 보건정책을 지방 분권적 건강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정책은 여전히 상당 부분 중앙정부로부터 '하달식'으로 진행된다.

본보가 더불어민주당 김성주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진료권별 치료가능 사망률 및 입원사망비 현황’을 보면, 2020년 기준 도내 6개 진료권역(춘천·원주·강릉·동해·속초·영월권역) 중 강릉권역을 제외한 5개 권역에서 치료가능사망률이 전국 평균(인구10만명당 40.76명)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치료가능 사망률은 병원에서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람들의 비율이다. 특히 동해권역이 인구10만명당 52.29명으로 가장 높았고, 춘천권역 48.88명, 속초권역 47.13명, 영월권역 41.87명, 원주권역 41.53명, 강릉권역 40.17명 순이었다.
지역간 건강 수준의 차이는 질병관리청의 2021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강원도는 2021년 현재흡연율이 21%로 충북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월간음주율은 56.5%로 울산과 함께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걷기실천율과 건강생활실천율은 가장 낮았다. 서울과 세종 등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은 현재흡연율과 월간음주율 모두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를 시·군 단위로 보면 격차가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정선은 전국 모든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월간음주율(62%)이 가장 높았고, 홍천은 비만율이 41.4%로 전국 최고였다.

이처럼 주민들에게 필요한 건강 서비스가 지역별로 다르고, 보건소와 진료소 등의 역할도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시기 의료원과 보건진료소, 보건소에서는 전국 일률적으로 진료가 일시 중단·축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평소에도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보건소는 감염병 상황이 발생하자 모든 인력을 동원해 역학조사와 감염 차단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강원도내 농·어촌을 포함한 전국 의료취약지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농·어촌 의료취약지에는 병원이 없어 주민들은 보건진료소와 보건소 진료에 크게 의지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4월까지도 상당수의 보건소와 보건진료소가 진료 기능을 축소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이 계속됐다.

김영남 고성 도원보건진료소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의료가 지역 내에서는 충족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가정 방문을 해보면 의료와 복지 양쪽이 모두 필요한 어르신들이 많지만,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속초의료원까지 가야 하고, 필요한 복지 서비스는 중단된 상황도 자주 목격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역 주민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고령층 어르신들이 지역 내에서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지원과, 질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복지서비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인력부족,' '재정적자' 로 앓아눕는 공공의료기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지역 공공의료기관 역시 일괄적인 중앙집권적 보건정책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인력과 재정에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원주의료원의 권태형 원장은 "주기적으로 공공의료 기본계획은 수립하더라도, 어느 정부에서도 각 지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의료가 무엇인지, 환자 진료, 돌봄을 맡을 인력은 얼마나 필요한지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며 "비교적 사정이 나은 원주의료원에서도 정신과 입원진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도내 타 의료취약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인력 부족을 맞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적으로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대폭 확장하고, 지역에서 책임의료기관이 선순환 구조를 가지고 운영될 수 있을때까지 국가적으로 돌봐주는 시스템이 절실하다"며 "주민들의 건강필요, 인력, 지역적 특성을 모두 고려한 종합적인 지역 건강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지방의료원의 재정 적자 문제는 또다른 과제다. 영월의료원의 경우 지역 내에 다른 중규모 의료기관이 없는 현실을 감안해 코로나19 진료와 일반 환자 진료를 병행했지만, 정부의 감염병전담병상 운영비가 코로나19 확진자 진료에 한해 집중 지원되면서 오히려 2022년 하반기 심각한 재정 운영상의 어려움을 맞이하게 됐다. 김은성 영월의료원 총무과장은 "지역 내에 진폐 환자가 많아 호흡기 병동을 중단할수도 없었고, 의료원이 문을 닫으면 다른 지역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야 하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인공신장실을 닫을 수도 없었다"고 토로하고, "이처럼 지역 내에서 주민들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이후 남는 것은 환자 수 감소로 악화된 진료 수익과 부채뿐"이라고 호소했다.
■"중앙집권적 사고로는 더이상 안 돼…지방정부 책임감 가져야"
건강과 돌봄 문제를 오래 연구한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이제 중앙집권적인 건강정책의 시대를 끝내고, 지방정부가 자발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먼저 주민의 건강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창엽(사단법인 시민건강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아직까지 주민들의 건강 문제와 보건이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일, 혹은 건강보험에 관련된 일로만 여겨지는 시각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지역 인구가 줄고, 의료 자원을 둘러싸고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 지방 정부와 주민들 차원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의료기관이 민간에서 운영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인식 역시 전환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즉, 지방정부가 주민의 건강문제를 중앙 혹은 지역 내 의료기관에 맡기려는 인식을 버리고, 지역 안에서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건강과 돌봄 인프라의 공공성을 확장시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분권'이다. 행정과 의회가 각 지역별로 분권화돼 있듯이, 보건정책에서도 분권화를 통해 '주민 중심'의 요구사항이 관철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지역별로 필요한 보건소와 공공의료기관의 형태가 다르지만, 현재는 농촌형 보건소 등 사소한 차이를 제외하고는 전국이 일률적인 기준 하에 운영되고 있다"며 "정원과 배치 기준 등을 지역별로 달리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 요구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강원도의 경우 보건진료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의료원과 보건소 사이 협의와 조정, 연계도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역 차원의 네트워크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간 시장이 진입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점점 공공의 역할이 커질수밖에 없는 만큼 지금부터 법률, 예산, 조직 모두를 손봐 강원도형 공공의료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종국에는 노인 주치의제, 혹은 포괄적 주치의제 등의 제도까지 가능할 수 있도록 담대한 구상과 적극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세명대 기획탐사 디플로마 과정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