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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생각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이동수 화백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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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마크 로스코, 양양 출신 이동수 화백
다음달말 이동수 갤러리 상시오픈 나서

◇생전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동수 화백

“저는 관객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길 원합니다. 화가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1964년 10월 6일 양양에서 태어난 이동수 화백. 그는 파리, 비엔나, 싱가포르, 상하이 등 다수의 해외 아트페어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솔드아웃 시키며 동양의 마크 로스코라는 별칭을 얻었다. 끝이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안기는 그의 작품이 러시아 출신의 추상 표현주의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해외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미술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던 그는 향년 54세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서는 떠오르던 미술계의 별이졌다며 그를 추모했다. 남편의 부재로 슬픔에 젖어 있던 부인 김주희 씨는 그를 기억하기 위해 그 해 9월 화실을 리모델링 해 ‘이동수 갤러리’를 만들었다.

◇故 이동수 화백의 유작이 걸려있는 이동수 갤러리 내부 모습.

이동수 화백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운영 되던 갤러리는 다음달말부터 상시 오픈을 하기 위해 준비가 한창이다. 김씨는 곧 제대를 하는 아들과 함께 갤러리를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이 화백의 작품을 공유하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그는 이동수 화백의 영원한 첫 번째 팬이자,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이 화백이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학원에서 일을 하며 가정의 재정을 도맡았던 그는 이 화백을, 그리고 그의 작품을 사랑했다. 이 화백은 평소 그릇과 책을 주로 그렸다. 그렇다고 정물화를 그리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는 사물을 매개로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관객들은 작품의 주요 포인트는 사물이 아닌 배경에 있어서 작품을 계속 보고 있으면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설명한다.

◇이동수 갤러리에는 故 이화백 작가가 살아있을 당시 그림 작업을 할 때 쓰던 물감과 팔레트가 놓여있다.

또, 그는 그림 속 의미를 특정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관객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해석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관객들과 소통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의 노력 덕에 그가 남긴 작품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김주희 관장은 “이동수 갤러리는 이동수 작가 기념관이기도 하다. 주변 분들이 다른 작가의 그림을 전시할 생각이 없냐고 연락이 올 때마다 다 거절했었다”며 “이곳은 그를 추모하고, 기리는 공간으로 남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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