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에 발생한 고성 산불로 피해를 본 이재민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87억원 배상을 선고했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는 지난 20일 이재민 등 산불 피해자 59명이 산불 원인자인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26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에서 산정한 분야별 손해사정액의 60%인 87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재민들은 총 263억여원을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이 중 87억원만을 인용했다.
이재민들은 왜 자신들이 40%를 책임져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더욱이 1심 판결이 내려지는데까지 4년이 걸렸다. 이러는 사이 이재민들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국가는 어떤 역할도 못 했다. 이런 상황이 정상인가.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은 갈수록 빈번해지며 대형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1일까지 석 달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380건으로 최근 10년(2013~2022년) 동기 평균(247.5건)보다 53.5%나 많다. 강원도 산불 피해는 더욱 처참하다.
지난해 3월 일어난 산불은 강릉 옥계와 동해·삼척을 초토화시켰다. 2019년 고성·속초·강릉·인제 일대를 덮친 화마, 2005년 천년고찰 낙산사와 보물 479호 동종(銅鍾)은 흔적도 없이 녹아 내렸다. 2000년 장장 191시간 동안 불타며 강릉·동해·삼척·고성 산림 2만3,794㏊가 잿더미로 변했다. 산불이 대형화되고 있으나 대책은 수십년이 지난 현재에도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재난으로 사망·실종한 사람의 유족과 부상자에게 구호금이 지원된다. 또 생계 유지가 곤란하게 된 경우 생계비가 지급된다. 세제·금융·의료상 혜택도 보게 된다. 이러한 혜택들이 집이 송두리째 날아간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 특별재난지역의 혜택을 현실에 맞게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산불이 나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보다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그에 따른 정부의 추가적 지원을 검토하는 식의 발표는 거의 정형화돼 있다.
그래서는 산불 대책이 불과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세워지기는커녕 산불 대책에 대한 주민의 신뢰를 회복시키기도 어렵다. 산불 대책과 주민 간의 간격을 더욱 벌려 놓는 결과를 빚을 뿐이다. 산불은 재난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인 재정 투입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인 것이다. 재정 부족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라 올 예산 규모는 약 639조원이다. 산불 피해지역을 충분히 배상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나라다. 선심성 정책을 줄이면 산불 피해지역을 나랏돈으로 완전하게 복구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의지가 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