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는 이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말씀은 우리가 물려받은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여행을 떠나는 주인이 자신의 종들에게 능력에 따라 작게는 1달란트부터 크게는 5달란트를 나눠주고 여행에서 돌아와 종들이 그동안 한 일들을 평가한다. 1달란트는 상당히 큰 금액으로 종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받은 자산을 불려 나갔다. 주인은 불어난 금액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물려받은 자산을 늘리려고 성실하게 노력한 종들을 칭찬했다. 주인은 1달란트를 받고도 땅속에 깊이 파묻어 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종을 꾸짖었다. 더욱이 그 종이 가진 1달란트마저 빼앗아 자산을 많이 불리려고 노력한 종에게 나눠줬다.
분권을 의심하고 환경보호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소중한 자산을 가질 자격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어떤 지역은 험준한 산악과 풀 한 포기 없는 황야를 물려받고, 또 어떤 지역은 곡식이 자라는 풍요로운 옥토를 물려받기도 한다. 어떤 환경을 물려받았는지와 관계없이 더 풍요로운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개발과 환경을 분리된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달란트를 흙 속에 파묻은 사람과 같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환경의 가치는 더 커지고 환경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금수강산이 경제 발전으로 과거에 없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경제 발전으로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시고 있다.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분권이 환경을 훼손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환경을 이용한 정치꾼들이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전체주의적 통제를 요구하고, 우리 지역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불합리한 환경보호 정책으로 피해받는 주민들을 배제하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다.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으면 환경을 보호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환경 문제는 주민의 문제다. 주민과 밀접한 문제를 주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 환경 문제가 지자체의 범위를 넘어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분권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는다. 환경 문제는 다른 지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해당 지역의 주민에게 일차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다른 지자체에 피해가 전파됐다면 당연히 그 피해는 보상돼야 한다. 광역화된 환경 문제도 중앙집권으로 해결되기보다는 분권으로 해결될 문제다. 직접 피해를 보지 않는 중앙정부가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
분권화된 이후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분권을 막는 힘으로 작동해서는 곤란하다. 지역의 운명을 지역이 결정하지 못하고 중앙정부에 구걸하는 것이 더 좋은 체제인지 의문이다.
경제 발전이 지체된 지역은 앞으로 개발을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주민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 환경 정책에서 기준이 되는 비용과 편익으로 판단할 때, 개발이 우선돼야 할 지역도 있다. 발전된 지역에서는 환경적 가치가 상승해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더 노력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개발과 환경 훼손을 동일시하고 환경 훼손은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이다. 훼손된 환경은 다시 복원될 수 있다. 서울의 난지도는 훼손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공원이 돼 시민에게 돌아왔다.
주민들이 개발과 환경보호를 균형적 시각에서 결정할 수 있는 체제가 분권화된 체제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환경 개선은 분권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분권을 위해 함께 노력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