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년전 조업 중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귀환해 반공법 위반 등으로 처벌 받은 납북귀환어부 32명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춘천지법 형사1부(심현근 부장판사)는 12일 승운호, 제2승해호, 제6해부호의 납북 귀환어부 32명의 반공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 했다.
이날 검찰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되고, 법정 진술 역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토대로 이뤄져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이들은 1971년 8월 강원도 고성에서 오징어잡이 조업 중 납북됐다가 1972년 9월 속초항으로 귀환했지만 반공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등으로 수사를 받았다. 1심에서 선장들을 실형을, 선원들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32명 중 20명이 승운호에 탑승했고, 제2승해호와 제6해부호에는 각각 6명씩 탑승했다. 이 중 12명은 고인이 돼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이 이뤄졌다.
검찰은 "고인이 된 분들이 뒤늦게 나마 명예를 회복하고, 그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피고인들이 먼 거리에서 오는 점을 감안해 되도록 당일 선고를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변론을 종결하고 1시간 후에 선고를 내렸다.
심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이 발부 되기도 전에 불법 체포 됐고, 긴급 구속의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과 법정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선고 직후 납북귀환어부들과 유족들은 법정 밖에서 만세를 불렀다. 마치 긴 터널을 지나 빛을 본 듯 환하게 웃었다.
70세가 될 때까지 자녀들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아픔에 울먹인 이들도 있었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딸들도 있었다. 최고령 생존자인 김영택(90·고성군 토성면)씨와 자녀들은 "형사 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8년이나 감시를 당하며 지냈다. 오늘 이 자리가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고(故) 이진형 승운호 선장의 딸 이영란(59·속초 청호동)씨는 "아버지가 간첩으로 내몰려 어릴 때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지 않았다. 생계를 짊어지고 행상을 했던 어머니는 지금 병석에 계시고, 오래전에 아버지는 눈도 못 감은 채 돌아가셨다. 이제는 편히 쉬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춘삼(67)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대표는 "억울함을 풀어준 사법부와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오랜 세월 함께 인내한 모든 분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며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아직도 꺼내기 어려워 하시는 분들이 용기를 내고 나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선고된 재심 사건 외에 올해 들어 추가로 재심을 신청한 납북귀환 어부 4명의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도 진행됐다.
검찰과 변호인은 재판부에 재심 개시 결정을 요청했으며, 재판부는 이른 시일 내에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