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지·구·소·책]친환경 여행으로 추천합니다…준비물은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속초 등대해변에서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는 모습. 불과 30분 만에 100L 넘는 쓰레기를 모았다. 신세희기자

“준비물은 장갑, 쓰레기 봉투, 그리고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지난달 22일 오전 10시, 속초 등대해변에 장갑을 낀 수상한 이들이 모였다. 속초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현아(43·속초) 작가, 클린낚시캠페인운동본부 권은정(양양) 대표, 음악 활동을 하는 이유(37·속초) 오션플라넷 대표. 그야말로 환경 문제에 오지랖이 넓은 이들.

세 사람이 취재진에게 건낸 것은 장갑, 집게와 바다를 닮은 듯 파란 20리터 쓰레기 봉투였다. 모자도 단단히 썼지만 최고 기온 34도에 달하는 날이 뿜어내는 뜨거운 기온에 살짝은 주저하는 마음을 가진 채, 집게와 봉투를 받아들었다. ‘1시간30분은 주워야 이 봉투가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도 잠시 햇살에 반짝이듯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쓰레기 줍기를 시작.

◇속초 등대해변에서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는 모습. 불과 30분 만에 100L 넘는 쓰레기를 모았다. 신세희기자

눈에 불을 켜고 찾을 필요는 없었다. 고운 모래알에 박혀있거나 흩날리고 있는 이질적인 것들, ‘쓰레기’는 노력하지 않아도 아주 잘 보였다. 하나 하나 봉투에 담으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술에 취해서 술병 챙기기를 잊은 거겠죠?”, “도대체 왜 이 아름다운 풍경을 잘 보고나서, 이걸 망치는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걸까요?”

그러자 김 작가는 ‘아직 해맑으시네요’하며 웃는다. 그리 많이 걸을 필요도 없었다. 땀을 훔쳐가며 봉투에 가장 많이 담은 것은 텐트를 고정하고 버려지는 케이블 타이, 담배꽁초, 폭죽 잔해였다. 이밖에도 알알이 흩날리는 스티로품, 라이터, 맥주병, 물병, 밧줄, 돗자리, 부식된 부탄가스통, 루어낚시 잔해가 나왔다. 더위 때문인지 쓰레기를 버리고 간 이들의 양심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인상을 찡그리며 줍기에 골몰하느라 바다 풍경은 눈에 담을 새도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주사기도 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들도 나왔다. 두둑한 기저귀, 그리고 바위 위 고이 벗어 놓은 사각 팬티. ‘대체, 왜?’

태풍 카눈 덕분(?)도 있을까, ‘쓰레기투성이’ 해변에서 90분을 예상한 쓰레기 줍기는 25분도 채 안돼 끝났다. 파란 봉투는 더 담을 곳도 없이 꽉꽉 찼다. 이날 다섯 사람이 30여분간 주운 쓰레기만 110리터. 이동 거리는 110미터도 안됐다. 권 대표가 설명한다. “바늘이 달린 쓰레기들도 많아요. 고양이나 새가 바늘이 달린 물고기인줄 알고 미끼를 물었다면 어찌 되겠어요. 물병에 든 물은 함부로 따라 버릴 수도 없어요. 무슨 액체일 줄 알고요.”

◇속초 등대해변에서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는 모습. 불과 30분 만에 100L 넘는 쓰레기를 모았다. 신세희기자

이 대표도 덧붙인다. “다이빙을 하러 바다에 들어갔는데,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고 그냥 둘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다이버들과 해양정화활동을 시작한 거예요.”

마음만큼이나 무거운 쓰레기 봉투를 들고 쓰레기장으로 옮기는 것까지가 활동의 끝이었다. 바다행성을 플라스틱 쓰레기로부터 구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로 이뤄진 오션 플라넷, 클린낚시캠페인운동본부, 김현아 작가는 평일 1회, 주말 1회 함께 모여 바다 쓰레기를 줍고 있다. 함께 하고 싶다면 인스타그램으로 이들에게 소통해도 좋고, 아니면 집게를 들고 가까운 바다로 나서도 좋다.

쓰레기 줍기는 순식간에 끝났지만 땀을 많이 흘린 터라 기절할 것 같은 기분으로 다시 바다를 쳐다봤다. 바다는 여전히 영롱한 빛깔을 뽐냈고 파도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모래장에 부딪힐 뿐이었다. 언제까지 이 바다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여전히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바라보는 무거운 마음, 그래도 조금은 주워냈다는 뿌듯한 마음이 버려진 낚시줄만큼이나 엉켰다.


‘지구를 구하려는 소소한 책임감’ 을 갖고 우리가 흔히 가는 ‘여행’을 떠올려본다. 움직이려면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고, 쓰레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조금은 ‘친(親)’환경적인 여행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속초의 바다에서 쓰레기를 줍고, 들르면 좋을만한 몇 곳을 제안한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카페 '초원행'. 신세희기자
◇카페 '초원행'의 메뉴. 신세희기자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카페 '초원행'. 신세희기자

■초원으로 가는 길, 초원행=속초 청학동 마을 안 쪽, 골목길을 걷다 보면 커다란 돌이 카페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정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드넓은 초원 위 외딴 섬처럼 놓인 카페가 반긴다. 2021년 문을 연 카페는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일회용품도 사용하지 않는다. 들어서면 모양과 크기가 모두 제각각인 오래된 컵이 기다리고 있다. 음료와 곁들여 먹은 버터 토마토 바게트는 강원도산 찰토마토와 비건 버터를 넣어 깔끔하면서도 건강한 맛이었다. 남은 음료는 카페에 구비된 텀블러에 담아간 후, 다시 방문할 때 반납하면 된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카페의 노력에 손님들이 동참하며 지구 지키기에 힘쓰고 있다. 

◇각양각색의 나물이 차려진 '점봉산 산채' 의 산채 정식. 신세희기자

■통째로 먹은 산=정성이 듬뿍 담긴 건강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점봉산산채’식당을 추천한다. 1987년 박금순 대표가 인제 귀둔리에서 문을 연 후 2004년 속초로 옮겨왔다. 인제를 비롯해 양양, 양구, 홍천 등에서 자란 나물로 요리한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지만 여주로 만든 절임부터 맥문동, 궁채, 당기, 산도라지, 느릅나무 잎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물을 맛볼 수 있다. 반찬과 국 등에는 젓갈이나 고기, 생선으로 만든 소스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채식주의자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쌍화탕에 들어가는 재료에 커피 가루를 넣어 만든 약초 커피를 나눠준다. 달큰하면서도 알싸한 커피의 맛에 식사의 마무리까지 제대로 짓고 나온다. 

◇재활용품을 활용한 소품을 만드는 '모래알'. 씨글래스(바다에 버려진 마모된 유리 조각)를 주워오면 악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 신세희기자
◇재활용품을 활용한 소품을 만드는 '모래알'. 씨글래스(바다에 버려진 마모된 유리 조각)를 주워오면 악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 신세희기자
◇재활용품을 활용한 소품을 만드는 '모래알'. 씨글래스(바다에 버려진 마모된 유리 조각)를 주워오면 악세서리를 만들 수 있다. 신세희기자

■재활용의 가치, ‘모래알’=바다에 버려진 유리가 깨지고 풍화돼 영롱한 빛을 머금은 바다의 보석으로 변신한다. 올 8월 문을 연 소품가게이자 로컬문화플랫폼인 ‘모래알’에서는 바다에서 주운 ‘씨글라스’(Sea Glass)를 10조각 이상 가져오면 바다유리 팬던트 1개와 바꿔준다. 바다 정화활동을 인증하면 목걸이로도 만들어준다. 김남희(29) 대표는 모래알처럼 다양한 개개인이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 상생하기를 꿈꾸며 재활용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입지 못하는 옷을 가져가면 티코스터(컵받침)이나 곱창밴드로 만들어 선물해준다. 다양한 작가의 작업물들과 함께 친환경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