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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의인(義人)’

고대 로마시대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가 통째로 묻혔다. 훗날 폼페이 복원에 나선 고고학자들은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골목길에 석고처럼 굳어진 한 인간의 손에 값비싼 보석이 아니라 수술용 칼과 겸자가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겸자는 가위 모양으로 생긴 외과수술 기구다. 불덩이가 쏟아지는 최후의 순간에 화상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수술도구를 갖고 밖으로 뛰어나간 것이다. 의사의 본분을 잊지 않은 진정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였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 낸 건 의인(義人)들이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한 독립 운동가를 우리는 서슴없이 의인이라 부른다. 요즘은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지켜 낸 우리 사회의 위대한 영웅들을 일컫는다. 인간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하나뿐인 목숨을 구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행동이다. 사는 것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지만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준 의인들이 있었기에 살 만한 가치가 있고, 희망도 있다. ▼강원자치도소방본부는 2023년 한 해 동안 심폐소생술 등으로 타인의 생명을 구한 426명을 하트, 브레인, 트라우마 세이버로 선정했다. 이 중 일반인은 26명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 의인들이다. 의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숙연해지고 이기심과 물질 만능주의로 가득 찬 삶이 부끄러워진다. 심리학자들은 남의 선행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타적 본능 발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지역사회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생면부지의 타인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돕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의인은 위험에 뛰어든다. 무엇이 그런 행동을 낳는 걸까. 희생과 용기와 나눔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의인이 이타심 발휘 여부를 결정하는 시간은 0.3초라고 한다. 1초의 망설임도 없는 셈이다. 새해에는 의인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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