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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돈’이라는 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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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찬 사회체육부 기자

“어항의 크기에 따라 물고기 크기가 달라진다. 이 선수에게는 가장 큰 어항을 선사해주고 싶다.”

박재민 KBS 스노보드 해설위원이 자신이 후원했던 스노보드 유망주 이지오(양평중)가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이하 강원2024)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자 했던 말이다. 1명의 운동 선수를 만드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특히, 동계스포츠의 경우 해외 전지훈련 등이 필수여서 한 달에만 수천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박재민 위원의 발언은 어린 선수들이 ‘돈’이라는 어항에 갇혀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타깝지만 돈이라는 현실은 가혹하다. 한국은 강원2024에서 종합 3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미래를 기대하게 했지만 선수들을 향한 지원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당장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지원이 감소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청소년올림픽보다 훨씬 규모가 큰 성인올림픽도 대회가 끝난 뒤에는 찬밥 신세인 마당에 앞으로 청소년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강원2024 기간에 만났던 이혁렬 선수단장 역시 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대한바이애슬론연맹 회장도 맡고 있는 이 단장은 “강원2024가 끝나면 일부 시설 유지 장비를 판다는 얘기가 있다. 장비를 유지해 경기장을 계속 쓸 수 있다면 선수들이 해외 전지훈련을 가지 않아도 돼 비용을 아낄 수 있고, 비용 부담이 없으니 신규 선수 유입도 원활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혁렬 단장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같은 생각이다. 한 관계자는 평창올림픽의 대표 유산인 동계스포츠 저개발국 및 개발도상국 선수 육성사업을 두고 “그 돈으로 국내 선수를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국 동계스포츠에서 ‘돈’이라는 어항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원2024는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생애 첫 올림픽이었다. 선수로서 종착점이 아닌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지원이 더 중요하다. 특히, 강원2024에서는 썰매(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스키, 스노보드 등 그동안 한국이 약세를 보였던 설상 종목에서 많은 유망주들이 발굴됐다. 지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설상 종목 노메달에 그쳤던 한국이지만 다가오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는 설상 종목이 새로운 메달 밭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혁렬 단장 역시 “강원2024를 통해 설상 종목의 미래도 매우 밝다는 것을 느꼈다. 젊은 선수들이 많은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하고, 부상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 성인올림픽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설상 종목 선수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수 육성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단연 돈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국내 청소년 선수 대부분이 사비로 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 유망주들의 경우 대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후원이 없는 선수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돈이 없으면 선수가 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청소년 선수들은 강원2024를 통해 지원을 받으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제는 어른들이 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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