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운명을 바꿔준 시골 작은 병원서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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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심병길 '검객'

정선 사북·평창 미탄 배경
현재와 과거 회상 교차

◇검객이 실린 심병길의 소설집 ‘펑유''.

소설가 심병길은 2022년 단편 ‘발우생활정보신문 창업기’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새내기 작가다. 횡성중앙의원 원장이라는 의사 직함이 더 어울려 보이는 그가 최근 첫 소설집 ‘펑유’를 상재했다.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현재와 과거에 대한 회상을 이야기의 전개 안에 번갈아 등장시키며 시선을 잡아둔다. 소설집 마지막에 자리한 ‘검객’이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의도를 했든지, 아니든지 간에 불교에서의 연기론(緣起論)을 품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상의상관(相依相關) 상의상대(相依相待)’의 법칙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박기태가 시골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김일남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전형적인 칼잡이, 검객이었던 일남은 인턴 시절 응급실에서 최상도 과장이 의식불명의 환자를 소생시키는 것을 보고 흉부외과를 선택한다. 하지만 서른 넷의 어느 젊은 환자가 최상도의 안일함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됐지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최상도의 모습에 실망해 환자의 장례식 이후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최상도에 의해 세상을 떠난 젊은 환자는 다름 아닌 기태의 형 성태였다. 성태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어머니 하옥과 함께 정선 사북으로 흘러들었고, 정미라는 이름의 딸 하나 둔 박 반장을 아버지로 여기고 의지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 하옥은 박 반장과의 사이에서 생긴 기태를 출산한 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북을 떠나 서울 봉천동 쑥고개에 방을 얻은 박 반장은 인력시장에 나가 품을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 성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다니며 아버지를 도왔고, 정미도 인형 만들기에서 재능을 찾으며 안정된 삶을 만들어간다.

다만 기태만이 반항을 끼니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다. 그러던 중 아버지 박 반장이 진폐증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성태마저 최상도의 실수로 생을 등지게 됐으니 해병대에 지원 입대한 기태가 느꼈을 분노가 어느 정도였을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성태의 장례식장을 찾은 일남은 최상도가 보낸 화환을 바닥에 패대기친 해병대 청년이 바닥에 흩어진 그 꽃들을 한 노인과 함께 줍고 있던 장면을 자신의 병원 대기실에서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 그때 그 해병대 청년이 바로 기태였던 것이다.

사북에서 시작된 인연의 고리는 그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져 얼기설기, 씨줄과 날줄로 ‘뫼비우스의 띠’를 직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일남에게는 엄청난 섬뜩함이 엄습하지 않았을까. 소설 속 화자의 전환이 기태에서 성태, 일남으로 숨 가쁘게 변신하는 모습도 좋다. 특히 수술을 마친 성태가 환상 속에서 아버지 박 반장과 함께 사북버스터미널에서 첫차를 타고 정선을 거쳐 평창 미탄을 찾아 성묘하는 모습과 그것을 헬리콥터에서 지켜보는 장면 등은 상당히 영화적으로 묘사돼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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