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책]천태만상 군상들로 그린 전쟁의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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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국 중단편 소설전집 7: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

전상국 소설가가 이 시대를 천형(天刑)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들을 엮어 자신의 일곱번째 중단편 소설전집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를 최근 상재했다. 네 편의 중편과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번 전집은 전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중편 ‘아베의 가족(1979년)’ 과 ‘우상의 눈물(1980년)’로 이어지는 작품 세계의 흐름 안에서 연속성 같은 것을 포착해 낼 수 있다.

특히 표제작으로 전작가가 처음으로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은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1987년)’가 그렇다.

춘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를 혼혈아를 낳은 수지의 어머니 그리고 결국 미국으로 입양 가게된 흑인 혼혈아 수지가 나온다. 마치 ‘아베의 가족’ 에 화자인 ‘나’의 어머니와 지적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베가 등장하는 것과 그 구성면에서 상당 부분 닮아있다. 두 소설 모두 어머니가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상황마저 흡사하다. 하지만 아베가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아베라는 말만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수지는 냉정하게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어머니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주체적이고 당찬 모습을 보인다.

반면 이번 전집에 실린 제4회 윤동주문학상 수상작 ‘투석(1987년)’과 ‘썩지 아니할 씨(1987년)’, ‘외딴길(1981)’ 등 세편의 중편은 앞선 두 작품에 나오는 피해자 여성과는 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인물들의 삶에 시선을 고정한다. 과거 방위대장으로서 빨갱이를 학살했던 최 노인(투석), 전쟁 중에 미친 척 연기를 해 살아남은 뒤 온 집안을 망가뜨린 인물(썩지 아니할 씨), 악의 화신처럼 행동하고 죽으면서까지 혈족들에게 피해를 안기는 만주 할아버지(외딴길)가 그들이다. 아베, 수지와는 대척점에 있을 것 같은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김경수 문학평론가는 “전쟁이 여성들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의 비인간적인 악행이 성폭행이라고 본다면, 전쟁과 무관하게 살아가던 남성 인물들을 생존에 급급한 나머지 그 어떤 극악스러운 짓이라도 해서 살아남도록 다그쳤던 그 광기를 그들에게 가해진 전쟁의 폭력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전작가는 “글쓰기는 내가 선택한 인생 최선의 오솔길. 그리하여 소설 쓰기, 그 길 걷기 육십여 년은 우리말 우리글을 한껏 멋 부려 양질의 이야기를 빚는다는 자긍 그 신명이 그런 굿판이었다”며 “소설 쓰기의 즐거움으로 열등 체질의 그 어두운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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