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네팔, 나를 찾아가는 먼길]세번째 여행끝 만난 ‘그 나무 그 풍경’ 눈 오는 밤 고향집에서 다시 만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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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소설가의 '대관령에서 히말라야까지-나무 한 그루를 찾아서'
(完)히말라야에서 대관령까지

◇카트만두 아산 시장의 행상이 장작불에 옥수수를 굽고 있다.
◇파슈파티나트 사원 옆 화장터 가는 길에 만난 나무. ‘몽키테일’로 불린다.
◇ 타멜의 호텔에서 다시 만난 아라우카리아라는 이름의 나무. 저 나무를 찾아 길을 걸었다.
◇사원의 촛불들과 소년.
◇사원으로 단체관람을 온 아이들. 오래 전 나도 오대산 월정사로 소풍을 갔었지.
◇네팔의 설산 아래는 겨울도 봄이었다.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여인. 저 여인은, 나는 어디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을까.
◇파탄 광장의 가루다상. 가루다는 비슈누신이 타고 다니는 신조다. 주변의 비둘기들은 미래의 가루다일까.

대관령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트만두 타멜의 호텔 방에 앉아 침대 위에다 그동안 사들인 물건들을 쏟아놓고 들여다보았다. 유리창 밖으론 물탱크를 이고 있는 카트만두 분지의 지붕들이 희뿌연 안개 속에서 수묵화처럼 보였다. 나는 그 지붕들을 바라보며 싱잉볼(Sing bowl)을 연주했다. 둥근 구리 그릇 속에서 저녁연기처럼 피어나는 소리가 깊은 우물 속처럼 아늑했다. 두 개를 구입했으니 하나는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는데 그 누군가가 창밖의 안개처럼 묘연했다. 뭐, 돌아가면 누군가가 나타나겠지. 그리고 빨간 치약 두 개, 호랑이가 그려진 소염진통제, 독한 네팔 술 두 병, 에베레스트커피 원두, 티베트 사원에서 구입한 구리 향통(필통으로 사용하려고), 굵은 실로 뜬 작은 가방, 아산 시장에서 구입한 땅콩 두어 근......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암석에서 채집한 만병통치약이라는 실라짓(Shilajit) 한 통. 효능은 대관령에 도착해 복용해 보면 알 것이다.

나는 다시 싱잉볼을 연주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안개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고독한 성자 같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저잣거리의 오방색 물건들에 취해 나무 한 그루를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나는 홀로 호텔을 나와 나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도로는 어김없이 차량들의 물결이 흑백의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어렵게 건넌 뒤 담장이 높은 인도를 따라갔다. 나는 어떤 이유로 세상의 많은 나라 중에서 네팔을 세 번이나 찾아왔을까.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보며 산길을 걷겠다는 일념으로?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보다 많다는 힌두교의 신을 찾아서? 힌두교의 여러 신들은 매력적이긴 했지만 모든 걸 버리고 따라나설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적당한 시간에 네팔로 향하는 좋은 사람들을 따라나선 것일까? 아마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러했기에 민망함을 지우려고 나만의 나무 한 그루를 찾아 나선 것일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페인트가 지워진 횡단보도를 건넜다.

사실 지난 세 번의 방문 동안 나는 네팔의 사원들과 도시, 산골마을, 설산 아래를 주유하며 그때그때마다 새로 접하는 모든 것에 감탄을 하거나 안쓰러운 마음에 사로잡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 풍경들을 지나치면 늘 내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대관령에서 끌고 온 내 마음의 들끓는 도가니 속으로 서둘러 돌아오곤 했다. 그 안에서는 무엇이 끊임없이 아우성치고 있었던가. 차마 목록을 나열하기조차 창피한 것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네팔까지 끌고 왔던 것이다. 그게 부끄러워 벌건 대낮에도 다른 핑계를 대고 술에 취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세 번의 여행이 포함된 십 년 동안 도가니 속 아우성의 목록이 옷만 갈아입었을 뿐 그게 그거라는 걸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오, 이 깨달음이 바로 히말라야와 시바신의 힘이란 말인가! (그런데...... 세 번의 네팔 방문 비용을 합산하면 대략 1,000만원은 되는 것 같은데 깨달음에 비해 좀 과다한 금액이 아닐까.) 하여 나는 나무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자그마한 선술집에 들어가 잠시 목을 축이기로 했다. 억지로 찾는다고 그 나무가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나 ‘나 여기 있네’라고 말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멀리 있으면 보이다가도 가까이 다가가면 찾을 수 없는 게 인생의 어떤 숨은 꽃이란 생각을 선술집에서 하며 낮술을 마셨다. 멀리 떠나왔지만 결국 빈손인 여행을 만회하기 위해 마지막에 몰리면 나는 남은 돈으로 잡다한 물건을 구입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네팔 여행에선 어느 사원의 골목길에서 마달(Maadal)이란 북을 구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물고기 형상의 자물쇠, 야크 털로 짰다는 머플러 여러 장, CD 몇 장 등등을 배낭에 담았다.

두 번째 방문 땐 불상을 집중적으로 살폈는데 그 결과 자그마한 구리 불상을 만날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의 눈에서 나왔다는 타라보살(多羅菩薩)과 얍윰(Yab Yum)상이 그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한동안 그 물건들을 보며 감회에 젖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기억도 물건도 시간의 먼지 세례 앞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치약이나 연고의 효과가 더 오래 지속되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고 문득 기억이 떠오르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래야만 그곳으로 다시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선술집을 나와 나는 다시 나무 한 그루를 찾아 걸었다. 나무의 이름은 아라우카리아, 현지들은 크리스마스트리 또는 몽키테일이라 부른다. 차들이 붕붕거리는 거리였지만 왠지 히말라야의 높고 깊은 골짜기를 등에 짐을 가득 실은 말과 함께 마방꾼이 되어 걷고 있는 듯했다. 랄리구라스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산길을. 첫 번째 마방집을 만나면 라면 한 박스를 전해주고 두 번째 마방집을 만나면 설탕 한 자루를 내려놓을 것이다. 세 번째 마방집이 주문한 물건은 콜라 한 박스다. 그곳에 도착하면 날이 저물 것이다. 나는 화목난로 옆에다 짐을 풀고 독한 술기운을 빌려 마방집의 과년한 딸을 훔쳐보며 사랑기(Sarangi)나 마두금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 잠들 것이다. 그리고 해가 뜨기도 전에 마방집을 떠나 다음 고개를 향해 출발할 게 분명하다. 다음 고개는 아마도 외로이 고향집을 지키는 어머니가 계시는 대관령일 것이다.

고향집에 도착하면 무엇을 꺼내놓아야 할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닐까. 아마도 내가 찾는 나무는 고향집 뒤편 개울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헤아려보니 세 번의 네팔 여행 중 멀리 있는 설산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눈을 맞아본 적이 없다. 세 번 다 겨울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눈을 만난 것은 대관령에 도착해서였다. 폭설이 퍼붓는 깊은 밤 대관령에 도착한 나는 만둣국과 소주로 배를 채운 뒤 넉가래를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서쪽에서 몰려오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두 손을 합장했다.

거기, 네팔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나무 한 그루가 흰 꽃을 화사하게 피운 채 서 있었다. 대관령도 히말라야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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