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속 강원도]우연한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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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의 초희의 사랑-63

숏폼 전성시대 어울리는 소설
경포호 등 강릉지역 배경

강릉 출신 소설가 이광식이 쓴 ‘초희의 사랑’은 초단편소설집이다. 보통은 이런 류의 소설을 ‘잎’ 엽자를 써 엽편(葉篇)소설, 또는 콩트(Conte)라고 부르는데, 소설집을 펼쳐들고 서너장 넘기면 끝나는 소설이니, 요즘 같은 숏폼(Short-form) 전성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소설 유형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집 안에는 오늘 소개할 표제작 ‘초희의 사랑’을 비롯해 무려 마흔한편의 아주 짧은 소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중에서도 ‘초희의 사랑’ 은 불과 네 쪽(28~31쪽)에 지나지 않는다. 딴 일을 하면서도 10분 안에 거뜬히 끝낼 수 있는 분량이다. 소설 제목에 쓰인 초희(楚姬·1563~1589년)는 강릉 출신 조선 중기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본명이다.

주인공 우형과 한 여인이 등장하는 소설은 강릉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3월의 어느 봄날 나는 경포 호수 순환도로를 거닐다 우연히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미 경포 호숫가와 경포대 등에서 스치며 우아하고 섹시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 여성이다. 나는 어느새 그의 정갈한 머리칼과 깨끗한 피부, 깨끗한 다리에 매혹당하고 만다. 그는 나에게 다짜고짜 혼자왔냐는 질문과 함께 허초희의 생가터의 위치를 묻는다. 국문학 전공자인 나는 허엽 가족에 대한 전문가. 길을 묻는 여인에게 추파를 보내듯 말장난을 하던 나는 그를 데리고 허엽의 아들 균과 난설헌 초희의 생가를 찾는다. 친해진 나와 여인은 술을 마시고 경포호수를 걷다 손을 잡고, 호수처럼 숨죽은 바다를 즐기다 호텔로 향한다. 하지만 그 여인은 밤새 흐느낀다. 열흘쯤 뒤 여인은 자신이 듣던 시디 한 장을 나에게 보낸다. 시디 속 노래에 눈물이 흘렀고, 날아온 문자에서 여인은 자신도 그 노래처럼 슬프다는 말을 전한다. 내가 그리움에 젖어 소설을 쓰고 있다는 문자를 쏘아 보내자 여인은 다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호텔에 들어가 며칠 동안을 소설과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마지막 날 새벽에 이르러, 나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까지 한다. 여인은 그러겠노라고 말하고는 떠나버린다. 그리고 나는 여인이 남긴 “시간을 이기지 못하면 혁명은 없다”는 말을 음미한다. 새벽녘 여인은 다시 내게 보낸 문자에서 자신이 초희처럼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남편이 아이를 데려갔고 아이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는 사연도 털어놓는다. 하지만 여자는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 마지막 문자로 이별을 고한다. “하마터면 당신과 정말 결혼할 뻔했어요. 그러나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면 혁명이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키르기스스탄으로 가서 남편을 죽이든, 되찾아 오든 하겠다는 의지에 찬 여인의 말은 정신 못차리는(?) 나에게는 섬뜩한 비수로 가슴 한가운데 박히지 않았을까. 소설을 다 읽고나면 “무슨 얘기지?”라는 의문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너무 짧아 익숙하지 않은 장르적 특성 탓에 전체 이야기를 지나치게 압축한 부분은 기존 소설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개연성 측면에서 다소 불편하고 아쉽게 느껴질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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