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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나는 존엄한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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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승 전 언론인·행정학 박사

사람은 변하기 힘들다. 어릴 때 보고 들으며 형성된 성격이 평생을 관통한다. 감정의 학습 때문이다. 우리는 평상시에는 상식적·이성적으로 판단, 행동한다. 그러나 엉뚱한 사건, 사고, 사태가 벌어지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서 그렇다. 어릴 때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나는 절대 저런 아버지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한다.

그런데 평상심을 깨트리는 사태가 발생하면 그렇게도 싫었던 폭력적 행동을 하게 된다.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이라서 그렇다. 치솟는 화를 뇌에서 거르지 못하고 어릴 때 학습한 감정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잘못하면 “뉘 집 자식인지~”라며 부모님까지 욕먹는 이유다. 물론 공부, 수양을 지속해 온 사람은 그렇지 않거나 덜할 것이다.

다시 광장의 시간(총선)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나? 평생 투표한 대로 A당 후보에게, 아니면 다른 당 후보나 무소속에게 할까? 그동안은 어떤 기준으로 투표했던가? 한번 보수면 영원한 보수, 한번 진보면 평생 진보인 사람들이 많다. 세상의 반만 보고 판단해서 투표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인들은 편하겠다. 공들이지 않아도 30%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으니까.

그런데 일평생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내 편이며 어떤 잘못을 저지르건 무조건 옳고, 저쪽은 아무리 잘해도 무찔러야 할 악인가? 그렇다면 맹목(盲目), 눈을 감은 것과 같다. 우리는 맹목에서 벗어나고자 독서, 여행, 사색, 토론, 경청한다.

세상이 변하고 발전하고 비틀리고 무너지면 그에 따라 생각, 판단 또한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변하지 않고 어떻게 발전, 성장하나 싶다. 광화문광장, 검찰청사 앞에서 깃발 흔들고 구호 외치면 애국하는 것 같고 가슴이 뿌듯해질 수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헛소리”라고 평가절하할 것이다. 같은 편 정치인들은 힘 안 들이고 선거운동이 되니 참 좋겠다.

사람은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역사가 반복된다. 삼라만상은 쉬지 않고 변한다. 무상(無常)한 세상에서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퇴보가 아닐까? 생각이 고정되고 습관대로만 살아간다면 어린 시절 학습한 폭력을 반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매번 똑같이 투표한 결과 세상이 어떻게 됐는가?

“나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주변의 변설과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 당신을 더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사람에게 설득당하지 마라. 그런 사람들은 당신을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당신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두 눈으로 보고 스스로 판단하라.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당선)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말라.”(뇌과학자 게랄트 휘터, 존엄하게 산다는 것)

일제가 조선에게 “너희들을 위해 정복했다”는 변설을 믿지 않듯 생각의 식민지가 되지 말아야겠다.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생각도 들어보자. 감정과 생각, 인식과 판단을 가다듬어 나만의 나침반을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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