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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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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어느덧 추운 겨울이 끝나고 한국은행 강원본부가 있는 춘천에도 꽃이 만개한 봄이 찾아왔다. 봄이 오니 강원도에서 맞는 첫 겨울을 맛보고는 화들짝 놀라 잠시 내려놨던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다시 외치는 젊은 직원도 눈에 띈다. 지나간 겨울을 곱씹어보면 겨울만 되면 꽁꽁 얼어붙는 고용시장의 모습은 아쉬웠다. 구체적으로 올 1월 강원지역 취업자 수는 75만5,000명이었는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 5월의 87만8,000명에서 12만3,000만명(-14%)이 감소했다. 특히 고용 취약층인 임시 및 일용직 근로자가 각각 30%, 40% 줄었다.

이번 1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2023년 1월)과 비교하면 1만4,000명이 늘어났기에 겨울치고는 양호했다고 볼 수 있다. 답을 하자면 고용지표가 기조적인 흐름과는 무관하게 매년 여름철(7~9월)에는 좋다가 겨울철(12~2월)에는 안 좋아지는 현상, 즉 고용의 계절성 때문이다. 고용 계절성은 강원지역의 경우 2010년 이후 점차 커지면서 2023년에는 전국 시·도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은행 강원본부에서 ‘지니계수’라는 개념으로 실업자 수가 월별로 얼마나 균등한지 계절성을 수치화해 지역 간 비교해본 결과다. 지니계수는 0~1의 값을 가지고 1에 가까울수록 계절성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2023년 기준 강원지역은 0.29로 전국 평균(0.13)에 비해 2.3배 높았다. 이는 강원지역의 산업구조상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건설업 및 농림어업 등의 비중이 큰 데다가 수려한 자연환경 등으로 관광업이 발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동 산업들은 공통적으로 계절성의 주된 원인인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상용직 일자리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특징이 있다.

문제는 계절적 실업의 정도가 심할 경우 경제주체에게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근로자의 경우 고용 및 소득 안정성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재취업을 위한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또한 재취업에 실패할 경우 이들이 장기 실업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높다. 한편 기업은 인력을 재채용해 교육해야 하는 데다가, 잦은 인력 교체에 따른 낮은 근로의욕 등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비용도 발생할 수 있다.

지자체나 유관기관 차원에서 먼저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은 겨울철에 공공근로사업과 같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가급적 늘리는 노력이다.

또한 매해 단기 실업이 반복되는 업종의 경우 연간고용 전환을 통해 근로자와 기업이 모두 상생하는 일자리 사업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근로자 및 기업은 기존 연간 급여(예를 들어 9개월치 급여)를 12개월로 나눈 수준 이상을 월급으로 해 연간계약으로 전환하고, 지자체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퇴직금 등 인건비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동계 스포츠 시설 유치, 겨울 축제 등 관광 상품 개발 등을 통해 관광객의 계절적 편중을 완화하는 한편, 제조업과 같이 날씨의 영향이 작은 산업의 유치에 계속해서 힘써야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사람들은 고용되었을 때 최상의 만족을 느낀다(When men are employed, they are best contented)”고 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 중심에는 일자리가 있다. 얼·죽·아도 울리는 강원도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 순 없겠지만, 관심과 지원이 모여 겨울철 일자리 걱정이 덜어진다면 그게 바로 언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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