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일반

손흥민 키운 손웅정 "친구 같은 부모는 존재할 수 없어…직무 유기라고 봐"

"고쳐야 할 부분 있으면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끝끝내 말해줄 수 있는 건 부모뿐"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워…자식에게 물음 던지는 사람이 진짜 부모"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본인의 인터뷰집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24.4.17. 연합뉴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주장을 맡고 있는 춘천 출신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인터뷰집을 냈다.

손 감독은 1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흔히들 자식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어 줘야 한다고들 하는데 저는요, 그거 직무 유기라고 봐요."라면서 책을 통해 교육관을 피력했다.

SON축구아카데미의 감독이기도 한 그는 "친구 같은 부모"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애가 습관적으로 뭘 좀 잘못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어. 근데 친구끼리 그게 돼요? 아니 못 고쳐. 친구가 지적은 할 수 있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끝끝내 말해줄 수 있는 건 부모뿐이라고요."

손 감독은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우고, 작은 부모는 크게 될 자식도 작게 키운다"는 생각으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한다. "자식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진짜 부모"라는 신념도 지녔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어떨 때 행복한지, 꿈은 무엇인지 늘 질문했다. 돌아오는 손흥민의 답변은 항상 같았다. "나는 축구하는 게 가장 행복해."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본인의 인터뷰집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4.17. 연합뉴스.

손흥민은 기본기를 익히는 데만 7년의 세월을 쏟아부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겨움을 느꼈을 법한데, 짜증 한 번 안 냈다고 한다.

"짜증요? 흥민이가요? 아니 자기 꿈이 여기 있는데 무슨 짜증을 왜 내겠어요. 제가 무서워서 순순히 따랐는지도요(웃음)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하면요, 저 아주 매섭게 혼냈거든요. 흥민이 장점이요? 음, 매사에 비교적 인정을 잘한다? 네 인정은 좀 잘해요."

손 감독이 자식에 대해, 교육관에 대해, 그처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많이 공부했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가 아닌,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을 통해서였다. 그는 책을 읽으며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어떻게 살지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고 한다.

손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학교 공부는 등한시했다. 자신을 틀에 집어넣으려는 학교 교육에 대해 일정한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본인의 인터뷰집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4.4.17. 연합뉴스.

그는 책에서 "학창 시절엔 반항아였다. 선생님들이 (나를) 틀에 넣으려고 해 자꾸 뛰쳐나가려고 했다"고 회고했다. 대신 책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 읽었다고 했다.

"그때도 공부의 기본은 독서라 생각했어요.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독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미래를 여는 열쇠는 책에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책 읽기는 곧 습관이 됐다. 책 한권을 열독했다. 줄을 그어가며 세 번씩 읽고 독서 노트까지 기록했다. 노트까지 쓰고 나면 망설임 없이 책을 버렸다. 일단 청소하는데 거추장스러웠다. 또한 책을 모으면 "자랑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감정이 싫었다고 했다. 연간 200~300권씩 읽었다고 하니, 버린 책도 수천권은 족히 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서점에 나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책을 통해 읽어 내려간다고 한다. 생업에 종사하랴 자식 키우랴 시간 내기 어려웠지만 책 읽기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정성만 기울이면 아무리 바빠도 낼 수 있는 게 시간이라고 그는 믿었다. 누워서, 화장실에서도, 이동할 때도 책을 읽어 '삼상지학'(三上之學)이란 말을 만들어낸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처럼 "시간만 낸다면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책에 '진심'이었지만, 자식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진 않았다. 그저 읽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한다. "저는 가난만 대물림되는 게 아니라 부모의 게으름, 부지런함, 청소하는 습관도 대물림한다고 생각해요. 어디 가서 사람과 사람 간에 선을 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도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책이란 지식의 집대성이고, 그런 수많은 책을 읽다 보면 지식은 흩어져도 그 정수인 지혜는 마음에 남기 마련이다. 그가 수많은 지식에서 증류한 지혜는 겸손함이다. 그런 겸손은 인품으로 드러난다. 그가 손흥민에게 늘 강조하는 것도 인품이라고 한다.

"공 하나 잘 찬다고 해서 월클(월드클래스)이 되는 건 아닙니다. 인품을 동반해야 합니다."

앞서 손 감독은 올해 초 서울의 한 호텔 카페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교육 철학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에 대해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는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집에 오면 부모 핸드폰부터 치워 두는 게 가정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손 감독은 "아이가 태어나면 말은 못 하고 눈으로 보기만 한다. 누구나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성장하게 된다"면서 "부모는 TV 보고 핸드폰 화면 들여다보면서, 애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면 하겠느냐. 자녀가 책을 읽기를 바란다면,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써라"라고 말했다.

'솔선수범'은 손 감독 교육 철학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다.

훈련법 하나하나마다 직접 해보고서야 손흥민을 가르치는 데 적용했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손 감독은 축구 기술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손흥민에게 본을 보이려 노력했다.

그는 담배와 술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은 최근 들어서야 건강을 위해 와인 한 잔씩 마시곤 한다.

힘들게 살아가던 시절, 어린 손흥민을 훈련장으로 실어 나르던 비 새는 구형 프라이드 차량을 닦고 또 닦으며 감사해하기도 했다. 이런 마음가짐의 손 감독을 보면서 손흥민은 누구보다 팬 서비스에 진심인 스타로 성장했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줄 아는 부모만이 아이를 가르칠 자격이 있다는 게 손 감독의 생각이다.

손 감독은 "카페에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영상 보여주는 건 결국 부모가 편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닌가"라며 "난 아이들이 어릴 때 식당에 가면 흥민이 엄마와 번갈아 가며 밖에서 애를 보며 밥을 먹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부모라면, 배고픔, 불편함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아이들은 보고 배운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성선설을 믿는다. 그리고 그 선한 아이를 망치는 건 자격 없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건, 기본기를 닦는 지난한 과정을 건너뛴다면 그 누구도 일류가 될 수 없다는 게 손 감독의 지론이다.

손흥민을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경기를 뛰지 못하게 하고 볼 리프팅, 패스 등 기본기 훈련만 '죽어라' 시켰다.

손흥민은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는 손 감독에게 '반기' 한 번 제대로 못 들었다고 한다. 왜냐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손 감독은 학습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스스로 이루려고 하는 동기라고 본다.

동기가 없다면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이 동기를 가지게 하는 건, 바로 '꿈'이다.

손 감독은 손흥민에게 단 한 번도 축구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자유롭게 놀게 해줬을 뿐이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학교에 무단결석하면서까지 손흥민 형제를 데리고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손 감독은 "많이 뛰놀면서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다 보면 어떤 아이든 '이런 것도 있구나, 이걸 잘해보고 싶어. 내가 이건 잘할 수 있어' 하는 것을 찾게 된다"면서 "흥민이에겐 그게 축구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유치원에도 의대반이 생길 정도로 의대 선호 현상이 극심하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손 감독은 흥분하며 "미친…"이라고 한 뒤 "아이의 재능은 '개무시'하고 당장의 성적에만 목매는,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애들을 망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 사회가 '성공'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 감독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10만원을 버는 것보다 재능이 있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5만원을 버는 게 행복한 삶 아닌가"라고 말했다.

손 감독은 자신과 손흥민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둘 다 '사랑하는 축구'를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기에 성공했다고 규정한다.

손 감독은 "손흥민을 '강자'로 키우려고 노력했고, 지금 나에게서 축구를 배우는 학생들도 강자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강하다는 건, 돈이 많고 힘이 센 게 아니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 나간다면, 그게 강한 거다. 난 그런 강자를 키우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참혹하게 무너진 교권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사건, 사고가 매년 쏟아지다시피 하고 있다.

손 감독은 이 문제 역시 '부모 탓'이라고 했다.

◇경기 지켜보는 손흥민-송웅정[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이들이 엇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부모가 확실하게 제재해야 하는데, 감싸고 돌며 과잉보호하고, 교사에게 책임을 미루다 보니 학교가 엉망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손흥민을 지도할 때 체벌까지 했다는 걸 예전부터 숨기지 않았다. 교육청, 경찰에 신고까지 여러 번 들어갔다고 한다.

손 감독은 "성서를 보면 '아이의 마음속에 어리석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아버지가 자식을 체벌한다"면서 "체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아이에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라고 정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끝까지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체벌할 때는 '뚜렷한 기준'과 '사랑',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했다.

이제 축구를 가르칠 때 체벌은 하지 않지만, '욕'은 한다고 손 감독은 말했다.

손 감독은 "대충대충 살면, 이 세상에 설 곳이 없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면서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애정을 전제로 깔고 이따금 '큰소리'를 친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지도자라면, 아이들이 당장 지금이 아닌 성인이 됐을 때 경쟁력과 인성을 갖춘 선수로 만들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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