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 막장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막장은 수백m 지하에서 전등 하나에 의지해 석탄가루를 마셔가며 탄을 캐는 탄광의 최후의 장소다. 채탄 기술이 낙후됐던 과거에는 이곳에서의 탄광 사고가 빈번했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라도 나면 그야말로 생매장이었다. ▼근무환경이 워낙 극악하다 보니 막장은 특정한 상황의 마지막 장에 다다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됐다. 극한의 경제적 어려움에 몰려 여기서 일하지 않고서는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상황을 막장인생이라 부르는 등 의미가 더 확장됐다. 막장도시, 막장드라마, 막장부부, 막장주인공, 막장극장 등 완전히 말아먹은 일이나 인생을 뜻하는 다양한 비하 단어가 파생됐다. ▼1950~1980년대의 석탄산업은 국가 기간산업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한민국 산업 역군이었던 광부들의 삶이 비하의 의미로 쓰이자 2009년 당시 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막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며 “막장은 숭고한 산업 현장이요, 진지한 삶의 터전입니다”라는 항의 글을 언론사에 돌렸다. 광산 현장을 비하하는 말을 유행어로 만들어 사용하는 세태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대한석탄공사는 올 6월 태백 장성광업소를 폐광한다. 이 광산은 지난 3월 채탄이 종료됐으며 현재는 광차 등 갱내 장비 철수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장성광업소는 1936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전성기 때는 한 해 최대 227만톤의 석탄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광산이었다. 탄광이 워낙 커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왔다. 광산 주변에 인구가 늘자 1981년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돼 ‘팔도 사람 다 모인 하늘 아래 첫 도시’인 태백시가 만들어지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 패턴의 변화 등으로 석탄산업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장성광업소도 결국 다른 전국의 탄광들처럼 문을 닫게 됐다. 30도를 오르내리는 고온을 잊은 채 피땀 흘려 일하며 우리나라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을 캐내는 숭고한 산업 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이었던 막장이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