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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의료 사태가 명현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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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선언을 기점으로 시작된 의료계 파행이 국민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공의들의 사표를 시작으로 의료계 집단행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의료 수혜 확대와 소외된 지방 의료의 복구를 위해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고, 의사들은 자신들을 이기주의 집단으로 몰고 가며 일방적인 의료행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정부와 의사들의 대립 국면 속에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못 받고 있는 국민만 죽을 노릇이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잘못되었는지 따져서 풀지 않으면 의료 공백의 장기화로 대한민국의 의료는 파국을 맞이하며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것임에 분명하다.

이번 의료 사태를 주역(周易)의 관점에서 보면 불통과 반목이다. 불통의 괘는 비(否)괘이고, 갈등의 괘는 송(訟)괘이다. 불통의 비(否)는 하늘과 땅이 서로 반목해 꽉 막혀 있는 형상이고 갈등의 송(訟)은 하늘과 물이 서로 등을 돌리며 소송하고 있는 형상이다. 불통은 인간사에서 가장 인간답지 않은 일이다(匪人·비인). 하늘과 땅이 서로 소통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사는 중간(中·중)에 그만두면 좋지만(吉·길), 끝까지 계속하면(終·종)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한 나쁜(凶·흉) 일이다. 자기가 믿고 있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면 결국 파국은 끝나지 않는다. 꽉 막혀 있는(窒·질) 형상이니 중간에 중재자를 둬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다.

혹자는 말한다.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고통도 필요하니 병을 낫기 위한 명현(瞑眩) 현상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현은 한의학에서 약을 투약한 후 병이 완전히 낫기 전에 있는 부작용을 말한다. 병이 치료가 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약으로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지럼증이나 구토 같은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는 논리다. 이번 의료 사태도 더욱 발전된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위해서는 갈등이나 반목이라는 명현 현상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명현 현상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힘없고 위중한 국민들이란 것이다. 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길을 찾는다. 대통령과 장관이 아프면 의료계 파업이라도 치료를 못 받을 확률은 없다. 그러니 의료 파국의 심각성이 정책자들의 피부에 와닿을 리가 없다. 명현 현상 운운하며 한 번은 겪어야 할 부작용이라고 강조해도 일반 국민이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명현 현상은 검증된 의료 치료도 아니다. 유교 경전인 서경에 나오는 구절을 근거로 이야기되는 잘못된 믿음이다. ‘만약에 약을 먹고 명현의 부작용이 없다면(藥不瞑眩·약불명현), 그 병은 낫지 못할 것이다(厥疾不?·궐질불추)’. 이 말은 원래 ‘서경’에 나오는 말로 맹자가 인용해서 사용한 말이다. 좋은 약은 부작용이 있으니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아도 명현 현상이란 약리작용은 없다.

의료 비상 사태를 맞이해 국민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아프지 않는 것뿐이라는 현실이 서글프다. 명현 현상이니 참으라는 정부의 무대책은 더욱 어이가 없다. 애초부터 전략도 없이 의대 증원을 확정해 발표했던 당사자들은 빠지고 의료 당사자인 국민과 의사들과의 갈등만 깊어가게 만든 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송사(訟)는 끝까지 가면 흉(凶)한 일이다. 불통(否·비)과 송사(訟·송)는 모두에게 이롭지 않은 안타까운(吝·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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