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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단상]무심결에 지나치는 일상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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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전 강릉원주대 교수

우리의 뇌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무수한 정보를 모두 처리하기에는 피곤하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적절히 여과해 중요한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한다. 행복을 주는 자극들은 생존에 필요한 정보가 아닌 주로 밋밋한 것들이어서 뇌가 적극 추구하는 것들이 아니다. 당면 과제의 해결에 집중하는 뇌는 푸른 하늘의 상쾌함이나 재미있는 농담 같은 사소한 자극들은 걸러내기 마련이다. 뇌의 관심을 끄는 내용은 대체로 두렵고 불안하며 울적한 부정적인 자극들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속상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잠자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 뜻밖에 흡족한 점심 메뉴, 즐거운 취미활동, 마음에 드는 신곡의 가사와 같은 소소한 기쁜 순간들도 만나게 마련이다. 행복은 어떤 조건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연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상의 많은 즐거움과 아름다움은 너무도 익숙해서 깨닫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지나친다. 이루고 싶은 성취와 그에 따른 걱정이 가득해 작은 감동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러한 걱정의 바탕에는 성취와 행복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마음이 있다. 어느 지점에 도달한 쾌감만이 행복인 것이다. 성과가 주는 성취감은 무한정 지속되지 않는다. 목표 달성이나 복권 당첨과 같은 희열은 일순간에 사라지는 행운일 뿐이다. 인생은 대부분 찰나의 성공과 실패 사이를 메우는 그저 그런 생활로 채워진다. 순간이 모여 삶을 이루어간다. 따라서 평범한 일상과 순간에서의 만족 여부가 행복을 결정한다.

습관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많은 고민과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작은 아름다움은 잊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무심히 지나치는 길가의 들꽃들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출근길의 파란 하늘, 창밖에 내리는 눈, 놀이터 아이들의 웃음소리, 무더운 여름날 지하철 냉방의 시원함이나 달콤한 낮잠, 병원 앞을 지나며 느끼는 자신의 건강한 모습, 항상 함께하는 가족의 다정한 시선과 같은 것이다. 뜻밖의 행운이나 사건이 없어도 주변의 사소한 것에 관심을 두다 보면 행복은 언제라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흔한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길 때가 많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무조건 돕는 시민들과 나라와 주민을 위해 노력하는 군경과 공무원들, 험지나 열악한 환경에서 봉사하는 의료인들, 불우이웃과 독거노인에게 음식을 무상 제공하는 상인들의 선행에 관한 기사를 접하면 훈훈한 마음에 취하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친절과 선행은 행복한 느낌을 유발하고 삶의 의미와 사회적 유대감을 자아내며 주위에 유사한 행동을 전파하는 ‘나비효과’도 초래한다.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만족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은 남아있는 제한된 시간을 감지하고 현재의 긍정적인 활동에 집중하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면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에는 초등학생 외손녀가 자신이 다 컸다고 하면서 할아버지의 손을 잡지 않고 걷다가도 길 건너 학교로 혼자 들어갈 때는 두세 번 뒤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 느끼는 흐뭇함도 커다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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