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출신 서양화가 이상원의 예술 여정 50년을 되돌아보는 특별한 전시가 춘천시 사북면 ‘이상원미술관’에서 마련되고 있다.
개관 10주년전으로 선보이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극사실주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는 이상원 작가의 화업(畵業)을 폭넓게 톺아볼 수 있는 시기별, 주제별 작품 56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타이틀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을 인용한 것으로, 상어로 부터 물고기를 지키기 위한 일전을 앞둔 노인의 각오를 고스란히 담은 대사다. 비록 실패가 예상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결기를 느낄 수 있는 장면으로, 도전의 연속이었던 이상원의 작가로서의 삶과도 상당히 닮아있다.

전체 전시를 대표하는 1부에서는 상업미술가에서 순수미술가로 변신하는 이상원의 전반기 작품세계들이 소개된다. 이 가운데 내로라하는 저명한 중견 화가들을 물리치고 제작을 의뢰받아 완성한 ‘안중근 의사 영정(1970)’이 가장 주목되는 작품이다. 순수미술가로의 정체성 변화를 이끈, 이상원의 작품 활동에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 준 작품이다. 또 이상원의 대표 연작 ‘시간과 공간’의 초기 작품으로 흙과 뒤엉켜 짓눌린 신문지의 모습을 강렬하게 표현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1977)’도 함께 전시된다. 이 작품으로 이상원은 1978년 중앙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한다.

2부(지나간 것들을 어루만지다)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진행 된 작품 중 이상원의 대표 연작으로 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마대의 얼굴’, ‘막’, ‘동해인’ 작품 22점이 전시된다. 특히 집요한 묘사력과 회화의 평면적인 특성을 엿볼 수 있는 ‘마대의 얼굴’ 연작, 이상원이 표현한 인간에 대한 작가의 이해가 투영된 ‘동해인’ 연작은 가장 눈여겨 볼 작품 가운데 하나다. 특히 500호에 이르는, ‘시간과 공간’ 연작 가운데 가장 큰 한 쌍의 작품이 미술관 메인 공간에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3부(자연에서 배우고 흙으로 돌아가다)에서는 ‘수탉(2015)·순무(2015)·철모(2018)’ 등 노년에 접어든 작가가 자연과 흙에 초점을 맞추고 작업한 최근작들이 공개되고 있다. 이상원 작가는 “이제서야 그림을 좀 알 것 같은 느낌인데 안타깝기도 하고 더 이상은 욕심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4일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