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오원배 제10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

전시마다 새로운 시도… 최근엔 희망의 몸짓에 주목
작업은 살아있는 생물… 노력 잊지 않는 작가 되고파

제10회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원배작가. 사진=김남덕 기자

“전시는 늘 새로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번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기 위해 작업해요.”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2025 제10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 오원배 작가를 만났다.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사다리와 함께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캔버스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장에 닿을 듯한 크기의 그림들 사이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과 굵은 붓자국이 거칠게 남아 있었고 작업대 아래에는 다양한 색의 염료가 묻은 플라스틱통이 수십 개 놓여 있었다. 오래된 붓들도 버리지 않는다는 그의 작업실은 오 작가의 예술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박수근 화백은 우리 미술계에 분명한 족적을 남기신 분이고 ‘국민작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존경받는 예술가죠. 여러 상을 받아왔지만 이번 수상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어요. 막상 상을 받고 나니 제 작업에서 새로운 역량이 발휘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느껴졌고 그런 점에서 부담도 된 게 사실입니다.”

기쁨이나 감격이 아닌 ‘부담’이라는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러나 오 작가가 예술과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이자 삶의 태도다. 작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 온 그는 전시마다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며 예술이 향해야 할 소통의 방향을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제10회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원배작가. 사진=김남덕 기자

특히 그의 작업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인체의 형상이다. 오 작가의 화폭에 담긴 인체는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시대의 긴장을 품은 상징적 존재다. 초기에는 체제의 폭력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몸짓으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고통을 딛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로 진화하고 있다.

“젊었을 땐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제 작업이 일종의 ‘휘슬 블로어(내부 고발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죠. 그래서 처음엔 이질적인 인체 형상을 통해 시대의 긴장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과 동물의 형질이 섞인 반인반수 형태로 출발했죠.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근육질의 육체적 구조처럼 구체적인 형상으로 전환되면서 다른 층위의 메시지를 담게 됐어요. 최근에는 인체의 몸짓이 단순히 고통을 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벗어나려는 의지, 희망의 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돌아보면 제 작업 속 인체는 늘 변화를 겪어왔고 전시마다 다른 시도를 하고 있죠”

그가 이토록 획기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82년 파리 유학 경험이 있다. 당시 한국은 정치적 억압과 표현의 통제가 극심했던 시기로 사회를 향한 비판적 시선은 종종 침묵과 검열 속에 묻히곤 했다. 하지만 파리는 달랐다. 오 작가가 지닌 사회에 대한 감각과 구조적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해 파리 미술계는 열린 태도로 응답했다. 그곳에서의 공부와 전시 경험은 단순한 경력의 한 줄이 아니라 이후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방향성을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70년대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어요. 당시엔 체제 선전이 난무했고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중요한 사건들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표현의 자유가 통제된 사회였기 때문에 어디서도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고 언론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파리에 가서는 그런 문제의식을 작업으로 풀어낼 수 있었고 제 작품이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어요. 한국에선 편견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작품들이었는데 당시 파리 화단에서는 오히려 관심을 갖고 봐줬고요. 그래서 귀국 후에도 그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왔죠.”

제10회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원배작가. 사진=김남덕 기자

그의 전시들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86년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동덕미술관에서 열린 ‘무제’ 전시다. 도록을 꺼내 보이며 오 작가는 그 시절을 회상했다. 지금의 작업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로 예술이 사회에 속해있던 시절, 먹색으로 가득 채워진 전시장은 당시에도 굉장히 센세이션했던 전시라고 그는 회고한다. 한때 그에게 검은색은 모든 색을 집어삼키는 절망과 죽음의 상징이었다. 검은색의 깊은 어둠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직접 섞어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도 작업실 한켠에는 다양한 염료들이 가득 놓여 있다. 하지만 이제 오 작가에게 검은색은 모든 것을 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색으로 자리 잡았다.

검은색에 대한 그의 애정은 유년기의 기억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바닷가 갯벌이 놀이터였던 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밀물에 휩쓸려 가는 일도 있었어요. 어머니한테 혼나도 또 갔죠. 그때 갯벌의 촉감이나 빛, 그런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거죠. 대부분의 작가들한테는 어릴 때 자라온 지역의 인상이나 그 환경이 작업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제10회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원배작가. 사진=김남덕 기자

오 작가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가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회와 지금은 너무나도 달라졌고 기술 문명의 발전은 이제 예술의 경계마저 흔들고 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까지 여는 시대 속에서 그는 예술의 본질을 ‘과정’에서 찾는다. 물감을 직접 개고, 손으로 그리고, 몸으로 무게를 느끼는 모든 행위 자체에 예술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저는 작업 과정 자체를 살아있는 생물처럼 여겨요. 특히 회화라는 건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리는 과정에서 스스로 증식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하죠. 어떤 형상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전혀 뜻밖의 이미지가 도출될 때도 있어요. 그런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회화의 가장 큰 매력이고 제가 회화를 계속하는 이유이자 예술이 지금도 지속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제10회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원배작가. 사진=김남덕 기자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작업들을 돌아보며 오 작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미술이 특정 계층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머물지 않도록 그 벽을 허물고 싶어 한다. 예술이 시대를 반영하고 사회와 호흡해야 한다는 믿음은 그의 작업세계를 일관되게 관통해온 핵심 신념이다. 어쩌면 그의 섬세한 시선은 서민의 삶을 따듯하게 담아낸 박수근 화백의 정신과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무엇을 그릴 것인가’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관심이 많아졌죠. 결국 관람자 입장에서 제 작품이 어떻게 전달되고 어떻게 읽히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소통되지 않는 작업은 제 기준에선 그냥 고지식한 이야기의 나열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희망, 생에 대한 참여 같은 우리 삶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내려고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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