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창 오대산 자락에서, 조선 중기 선승(禪僧) 사명당 유정(惟政·1544~1610)의 정신이 붓끝을 타고 되살아난다. 월정사성보박물관은 오는 10월 19일까지 특별전 ‘사명당 유정 대선사, 선필로 만나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월정사 중수 435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자리로, 수행자이자 승병장, 서예가이며 외교 사절로 살아간 유정 대사의 다면적 삶을 ‘선필(禪筆)’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총 52점의 유물들이 4개의 섹션을 따라 선사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지난 12일 개막한 전시의 첫 장은 ‘사명대사의 월정사 중창과 오대산 사고’라는 타이틀로 마련됐다. 초라한 폐사였던 월정사를 중창하고, 조선의 기록 문화가 응집된 오대산 사고의 설립에 큰 영향을 끼친 사명당의 모습이조명된다. 전시실 한가운데에 놓인 ‘은해사 사명당 진영’은 선사가 정면을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으로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고, 그 옆으로 ‘대곡사 진영’, ‘영은사 진영’이 그 흐름을 잇는다. 전시관을 돌다 보면, 그가 지녔다던 ‘원불 및 원장’과 함께 그의 생애와 사상, 행적 등을 조망할 수 있는 ‘사명당대사집’, ‘오대산사적’이 놓여 있다. 2부(사명대사 선사의 붓끝, 문인의 향기)에서는 사명당이 단순한 문인이 아니라, 수행을 글로 승화시킨 ‘선필(禪筆)의 장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부석사에 전해지는 현판과 친필 병풍들은 번민과 수행, 침묵과 기도가 교차하는 글씨의 결을 보여준다. 초서로 휘갈긴 글씨는 언뜻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염화미소 같은 단정함이 배어 있다.

3부(사명대사, 붓으로 평화를 이끌다)는 사명당이 두 차례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외교 여정을 조명한다. 그는 단지 국서를 전하는 사신이 아니라, 조선의 품격과 불교의 자비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총섭으로 임명되며 받은 ‘사명당 유정 교첩’을 비롯해 지난해 400년만에 국내로 돌아온 월정사성보박물관 소장 사명대사의 친필묵적 ‘불심종조달마원각대사’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4부(시대를 넘어 계승되는 사명대사의 정신)는 사명당의 사상과 정신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님의 선 수행과 실천에 대한 사상을 엿 볼 수 있는 ‘선가귀감’, ‘약사유리광본원공덕경’속 발문과 함께 소설 ‘사명대사’ 등의 자료를 통해 스님의 정신이 시대를 넘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살 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