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을 뚫고 묵묵히 고갯길을 오르던 막차. 1991년 9월, 태백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 노남호(태백중 교장) 작가는 거대한 산맥이 품은 도시의 첫인상을 마주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삭도와 희미한 검은 산비탈, 분주한 행인들의 움직임, 그리고 멀리 산봉우리의 통신탑 불빛. 그에게 태백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깊은 영감을 주는 곳이었다. 그의 사진전 ‘크게 밝은 산, 함백산’은 이처럼 30여 년간 태백의 자연을 관찰하며 쌓아온 시간의 기록이다.

오는 10일까지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함백산을 중심으로 한 태백의 자연 생태적 경관을 ‘빛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전시의 핵심인 함백산은 한강과 낙동강,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 수계가 갈라지는 국내 대표 분수령이자, 동해안과 내륙을 잇는 기후 생태 경계선이기도 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야생화 군락과 운해, 겨울철에는 눈꽃과 설경으로 이름나 사진작가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함백산은 작가에게 단순히 높은 지형이 아니라, 물을 가르고 생명을 품는 한반도 남쪽 자연 생태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가 함백산의 이름이 ‘크게 밝다’는 의미의 ‘한밝’에서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함백산(1,572.9m)은 태백시 황지동에 자리하며, 절골, 서학골, 지지리골 등 태백 시민들의 삶터와도 맞닿아 있다.

작가는 사진을 통해 함백산의 사계절 풍경을 선보인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겨울 새벽의 여명, 끝없이 펼쳐진 운해, 계절마다 피어나는 들꽃과 나무들의 모습은 자연의 웅장함과 동시에 섬세한 생명력을 전한다. 그는 30년간 함백산의 보전과 개발 사이에서 고민하며 사진 작업을 이어왔다. 2004년 태백생명의 숲 해설사 1기로 활동했던 경험은 그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예술적, 심미적 시선을 심어주었다. 전시는 단순한 풍경 기록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함백산 목장과 운탄고도 1330을 기록하며 느낀 감정의 층위를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지속가능한 자연생태적 접근방법에 대한 고민과 자연을 바라보는 심미안적·예술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