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전시

“석탄가루로 빚어낸 태백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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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법진 작가 ‘물성과 감성의 교감’ 전
- 서울 종로구 ‘갤러리 은’서 27일부터

◇최법진 作, ‘고원별곡’, 캔버스에 석탄가루, 324.4X130.3cm.

태백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최법진 작가가 ‘물성과 감성의 교감’을 타이틀로 한 전시를 27일부터 서울 종로구 갤러리 은에서 개최한다.

‘2025 강원갤러리 선정작가전’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석탄가루로 그려낸 태백의 고원 풍경과 탄광촌의 깊은 기억,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태백은 한때 ‘석탄의 도시’로 불리던 곳이다. 산업의 심장이던 탄광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도시와 사람들의 삶 속에 남아 있다. 화가 최법진은 그 잔흔을 석탄가루라는 독특한 재료로 화폭 위에 옮겨, 물성과 감성이 교차하는 새로운 회화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겉으로는 어둡고 무거운 질감을 품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는 희망의 빛이 스며 있다. 여백의 자유로움, 캔버스 위에 번지는 불빛은 탄광촌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희망과 의지를 상징한다.

작가는 10년 전 태백에 정착한 이후, 지역의 하늘과 산, 땅속의 물길과 바람에서 느낀 태고의 신비를 ‘고원별곡’이라는 주제로 풀어내고 있다. 사라진 장성광업소가 한국 근대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음을 작품으로 기록하려는 그의 의지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집단적 기억을 예술로 환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석탄가루의 물성에서 내 예술이 출발했다”고 말한다. 오랜 연구 끝에 석탄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도록 고안한 기법을 적용해, 깊이를 알 수 없는 흑색면을 만들어냈다. 이는 마치 수묵화의 농묵처럼 압도적이면서도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한다.

작품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 이면의 정서와 기억을 담아낸다. 탄광 도시 태백의 추억, 삶의 터전, 그리움과 아련한 정서가 화면 위에 겹겹이 쌓인다. 이는 관람자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을 넘어, 내면 깊숙한 감정을 환기하도록 이끈다. 작가의 회화는 단순히 한 화가의 실험을 넘어, 폐광 지역의 기억과 정서를 보존하는 문화적 기록이자 공동체적 예술로 평가된다. 석탄가루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흑색은 근대 산업의 그림자를 상징하지만, 그 위에 스며드는 빛과 여백은 다시금 희망을 말한다. 이번 전시는 다음달 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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