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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가뭄 끝에 비, 그 끝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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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남원 기자

‘가뭄 끝에 단비’는 반가운 풍경을 뜻한다. 그러나 요즘 강원특별자치도의 하늘은 그 속담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극한의 가뭄 끝에 찾아온 건 ‘단비’가 아닌 ‘극한 호우’였다. 올여름 강릉은 말 그대로 온 대지가 말라붙었었다. 강릉시민들은 전국에서 보내온 생수로 연명하다시피 했다. 올 6~8월 석 달간 겨우 187.9㎜의 비가 내렸다. 그러나 10월 한 달에만 317.2㎜가 쏟아졌다. 가뭄 때는 메마른 논밭을 걱정하던 농민들이, 이제는 쓰러진 벼와 침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추석 이후 17일째(10월19일 기준) 이어지는 비는 2016년의 ‘10월 최다 강수일수’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이는 강릉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삼척, 속초, 동해 등 영동 전역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 8월, 밭에 물을 대지 못해 작물이 타들어가던 풍경이 불과 두 달 만에 흙탕물로 가득 찬 논으로 바뀌었다. 물이 너무 없거나, 너무 많다. 균형을 잃은 하늘 아래, 주민들의 한숨만 커진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다가올 미래’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장마, 기록을 경신하는 호우, 500년 빈도라는 단어가 무색한 집중 강우까지. 댐 하나 없는 유역은 그저 속수무책이다. 정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양구의 수입천, 전남 화순의 동복천 등 전국 14곳이 후보지로 선정됐다. 단순한 물 저장이 아닌, 생명과 산업을 지키는 ‘기후방패’로서의 댐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러나 ‘댐’이라는 단어에 담긴 지역민의 불안과 반감도 여전하다. 수몰, 규제, 이전 등 과거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설명과 더 깊은 소통이다. 피해는 주민이 먼저 겪고, 변화 역시 주민과 함께 시작된다. 계획이 아무리 정교해도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강물처럼 흘러가버릴 뿐이다. 가뭄 끝에 단비는 이제 없다. 대신 가뭄 뒤에 쏟아지는 홍수, 그 끝에 또 다른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불안정한 하늘 아래, 우리는 더 단단한 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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