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붓과 렌즈가 한 공간에서 만났다. 묵향이 스민 화선지와 유화 물감이 겹겹이 쌓인 캔버스, 그리고 찰나의 빛을 가둔 인화지가 경계를 허물고 조용히 대화를 시작한다.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오직 세상을 바라보는 네 개의 깊고 그윽한 시선이 있을 뿐이다. 서양화의 임근우, 한국화의 이형재, 문인화가 정지인 그리고 사진작가 김남덕. 강원 문화예술의 지층을 단단히 다져온 이들 4인의 중견 작가가 춘천 갤러리 풀문에서 4인전 ‘춘몽대길’전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조형 언어가 어떻게 충돌하고, 또 어떻게 서로에게 스며들어 새로운 미적 울림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자 화합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형재 작가의 공간은 ‘잎새에 흐르는 강’으로 굽이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붓 대신 조각도를 들고 나뭇잎 하나에 삼라만상을 새겨 넣는 파격을 선보인다. 음각으로 파낸 잎맥은 나무의 억센 뿌리가 되고 기둥이 되어 생명의 길을 낸다. 그 옆으로 정지인 작가의 문인화가 흐른다. 정 작가의 붓끝은 고요하지만 날카롭다. 전통의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조형미를 가미한 그의 작품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오롯이 보여준다.
‘고고학적 기상도’라는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온 임근우 작가 는 이번에도 과거와 미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유토피아를 펼쳐 보인다. 머리에 복숭아꽃을 피운 동물들이 부유하고, 원시적인 생명력이 캔버스 위에서 폭발한다. 김남덕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평면의 화려한 시각적 향연을 갈무리 한다. 오랫동안 보도사진 기자로 현장을 누비면서도 예술적 시선을 놓지 않았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설악전경을 비롯해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거대한 산맥들을 렌즈에 담아냈다. 그의 사진 속 산은 단순히 멈춰있는 풍경이 아니다. 굽이치는 능선과 거친 암벽, 그 사이를 흐르는 구름의 파동은 마치 대지가 거칠게 호흡하는 듯한 역동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