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강원포럼]속초와 발해유적의 만남

 눈 내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극동대학 쿠르비얀코 발해연구소장과 함께 북동쪽으로 찾아간 발해토성 안에는 이상하게도 눈이 다 녹았다. 연해주 스테크야뉴 발해토성은 훈훈한 감동으로 밀려왔으며 그 감동은 연해주주립박물관, 극동대박물관, 러시아아카데미연구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발해유물은 140년 전 러시아로 떠난 고려인처럼 추운 땅에서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발해는 7세기말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나라로 229년 15대 동안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렸으며, 기층민은 과거 강원도의 고대부족이었던 예맥족이었다. 민족사학자들은 신라와 발해를 합쳐 남북국시대라 불렀는데 이것은 남쪽 신라와 북쪽 발해가 고려이전 한반도 독립국가였음을 자부한 표현이다. 1924년 동양서원에서 발행한 산운 장도빈 선생의 조선 10대 위인전에도 발해태조 대조영을 위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대조영을 동북아시아 고대사에 빛나는 업적을 이룬 한민족의 위대한 조상으로 칭송한 것이다.

 대조영은 남쪽으로 신라, 동쪽은 러시아 연해주 동해안을 차지했으며, 서남쪽은 압록강을 경계로 당나라, 북쪽은 흑수말갈에 이르렀는데 강릉인근 대공산성은 대조영에 의해 축조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뜨겁게 달아오른 한중간 역사논쟁이지만 중국은 이미 고구려사를 중국지방사로 격하시키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고구려유적을 북한과 공동 등재하였다. 내부적으로 금년을 발해사 등재의 해로 정하였고 흑룡강성 영안현 발해수도 상경용천부에는 한국인의 발길을 통제하며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일본이 한국사를 왜곡한다면, 중국측은 한국사를 중국사로 날조하고 있다. 이렇게 총성 없는 역사전쟁이 심각하게 펼쳐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북공정에 대한 외교적 유감표현 정도에 만족하고 있거나 사회과학원 학술연찬이라는 말을 순진하게 믿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중국은 고대 한국사와 한국문화를 자국화하였고 지속적인 국가과제로 다루면서 막대한 인적, 물적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대사강탈전쟁에 맨손으로 대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구려사에 이어 발해사마저 그들에게 내줄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러시아는 발해사에 대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우리와 다양한 우호협력을 바라는 것을 느꼈다.

 속초시는 환동해권의 중심거점도시로서 발해유적이 산재한 중국 훈춘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북방항로의 시발지이다. 이러한 환동해블루라인의 형성 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중·러 세 나라 역사를 비교하고 올바른 민족사교육을 강조할 수 있는 곳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2006년 11월 29일 발해시조 대조영의 KBS 대하드라마 촬영장인 설악시네라마가 한화리조트내 2만7,000평에 개관됐다. 주몽, 연개소문 등 고대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120여동의 대조영 궁궐터 등 실물촬영지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에서도 느껴지고 있다. 매달 수천 명의 역사체험관람객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속초와 발해의 만남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변국의 역사날조와 왜곡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발해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의도를 잠재울 발해사 교육과 이해의 공간이 시급히 필요하다.

 불행히도 국내에는 발해박물관이 없다. 대조영 촬영장이 들어선 속초시가 발해자료관과 역사체험테마파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의적절한 타당성과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 연간 천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고 있는 속초시는 항로를 통한 최단 거리 접근성을 확보해 중국 동북지역, 러시아 연해주와 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북한 실향민집단거주 지역으로 민족분단사의 생생한 현장이며 천혜의 어항과 수려한 설악산을 갖추고 있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역사관광체험교육장으로 투자가치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속초시에 발해역사체험장이 들어서야 할 학문적 근거와 영토적 배경을 갖추고 있으며, 동일한 고고학적 유물도 동해안에서 출토되는 점도 연계성을 말해주고 남는다. 이런 측면에서 속초시와 발해유적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은 필연일 수 있다. 속초가 영랑호 신라화랑체험장과 더불어 남북국시대 민족사체험거점도시에서 더 나아가 발해사를 한국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발해역사메카로 새롭게 부각될 것이다.

 장정룡 (강릉대교수·국제아시아민속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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