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계곡마다 ‘붉은 파도’가 밀려온다.만산홍엽(滿山紅葉)이 된 심산계곡 속으로 푹 빠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벌써 가을이 끝자락에 섰다.‘붉게 타오른 자연’에 눈을 뗄 수가 없는 시점이다.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산들은 저마다 흥에 겨워 빨간 장삼을 휘던지며 군무(群舞)를 벌이고 있다.단풍에 불타는 것이 멀리 있는 산과 계곡뿐이랴.동네 뒷동산, 도심의 가로수, 집 안마당에도 가을 색은 더욱 짙어 가고 있다.▼이번 주말부터 단풍이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설악산 오대산 등 도내 단풍 명소에는 인파로 더욱 붐빌 듯하다.해마다 이맘때면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지금 보는 단풍의 자태를 이듬해에 또 볼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돌고 도는 사계절의 섭리를 잠시 잊고서 말이다.울긋불긋 현란한 단풍이 너무 고와 영원히 붙들어 매놓고 싶어서다.물론 쓸데없는 걱정이다.역시 자연은 약속 한 대로 지난해 그 고운 모습 그대로 다시 자리해 주었다.▼가을 산이 여름의 숲처럼 초록 단색이라면 어떨까? 실망했을 것이다.그러나 고맙게도 조물주는 온갖 색을 가을 산에 뿌려놓았다. 색채 심리학에 따르면 빨간색을 칠한 방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주황색은 사물을 보다 커 보이게 만든다.또한 감색은 다른 사물보다 무겁게 보인다.요즘 감나무에 달린 감이 튼실해 먹음직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특히 설악의 가을 단풍은 그 빛깔이 붉고 맑기로 유명하다.이는 설악산의 청량한 기후와 식생의 생육 및 토양조건이 단풍을 더 짙게 해주기 때문이다.▼단풍은 희생을 상징한다.일생을 다한 뒤 어김없이 원래 있던 땅으로 돌아간다.단풍은 초록 잎이 탈색이 되어가는 과정이다.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뿌리가 더 이상 물을 빨아 올리지 못하게 되면서 광합성 활동이 멈춰 생기는 현상이다.즉 잎은 이제 서서히 녹색을 내놓고 자신의 삶을 마무리 짓는다.가을 잎은 스스로 언제 자기의 역할을 그만두어야 할지를 잘 안다.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다.단풍여행을 통해 각자의 위치를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조광래논설실장·krcho@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