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국제결혼업체를 통해 본 ‘국제결혼’의 실태
국내에 정착한 여성결혼이민자의 일부는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맞선을 보고 결혼한 이들이다.
이러한 국제결혼은 최근 상업화돼 서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고작 몇십 분에 불과한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때론 상대를 속이는 거짓 정보가 이들 다문화 가정을 파국으로 모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유일의 합법 국제결혼업체인 L상사를 통해 현지 국제결혼의 실태와 문제점에 대해 알아본다.
>> 국제결혼은 빠르게?
베트남 하노이 현지 유일의 합법 국제결혼업체인 L상사.
이곳에는 한국인과 결혼하길 원하는 베트남 여성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곳을 찾는 베트남 여성들은 수줍은 모습으로 직원들과 상담하며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국제결혼업체 L상사는 한국의 남성과 베트남 여성이 맞선을 보기 전에 사진과 프로필이 담긴 정보를 제공한다.
맞선을 본 후 열흘 동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제공한다.
또 전문통역사를 붙여줘 언어 소통의 불편함을 줄여준다.
모든 국제결혼업체가 이곳처럼만 운영된다면 누구나 안심하고 국제결혼을 할 수 있지만 이 업체가 유일한 합법 업체임에서도 볼 수 있듯, 일부 국제결혼업체는 졸속으로 진행되기 일쑤다.
일부 국제결혼업체를 통해 타국의 여성을 만나 결혼하는 총각들은 결혼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업체들은 빠른 결혼을 위해 현지의 여성에게 한국 남성에 대해 가족관계나 직업 등 거짓정보를 제공, 결국 다문화 가정을 파국에 이르게 하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A 국제결혼업체 관계자는 “남성의 출국과 입국 기간 동안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고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서 맞선 본 그날 결혼식이 진행되기도 한다”며 “일부 업체는 결혼을 더 앞당기기 위해 여성들이 항시 대기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고 했다.
>> 상업화된 국제결혼 시장
매매혼적 결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국제결혼중개업체들이 내건 현수막 등 홍보물이다.
‘도망가면 책임짐’, ‘후불제 가능’, ‘염가 제공’ 등 국내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들은 노골적이다 못해 여성을 상품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한국보다 양성평등문화를 갖고 있는 아시아의 여성들을 가부장적인 한국남성의 구미에 맞게 가부장적으로 미화시키기도 한다.
2006년에는 이러한 국제결혼중개업의 광고행태를 보다 못한 이주여성단체들이 ‘성·인종차별적 국제결혼 현수막 철거 공동행동’을 조직,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미국무성이 발행한 ‘2007년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베트남 신부,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표제로 걸고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국제결혼의 인신매매성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지난해 7월 이러한 현수막을 내걸 경우 처벌조치 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후 현수막 등은 많이 순화되고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국제결혼업체가 내건 인신매매성 현수막의 광고와 결혼중개업의 중개과정은 돈 주고 사온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고착시킨다”며 “이러한 사고는 가정폭력과 인격모독, 경제를 위한 노동활동과 임금갈취, 한국화를 강요하는 문화적 폭력 등 인권사각지대에 모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사진 보며 보고 싶은 마음 달랠수 밖에”
>> 한국으로 딸 시집 보낸 김티남씨
한국을 찾는 여성결혼이민자들은 왜 한국을 택하는 것일까.
일부의 여성결혼이민자들은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한국행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가정은 딸을 멀리 보냈다는 것으로 인해 서러움과 그리움을 참고 살아가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버스와 배를 타고 총 7시간여를 이동해 부산에 거주하는 여성결혼이민자 이상미(23·가명)씨의 가족을 만났다.
이곳에서 만난 어머니 김티남씨는 최근 일을 그만둔 아버지를 대신해 죽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2006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이상미씨는 당시 이웃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모두 잘살고 행복이 넘치는 나라로 간다는 소리에서다.
하지만 김씨는 주변의 소리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김티남씨는 “아이가 친구들에게 한국으로 시집가면 잘 살 수 있고 가정형편에 보탬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얘기했다”며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는 딸의 말에 가슴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했다”고 했다.
이곳 마을에는 이상미씨 이외에도 한국으로 시집간 가정이 2가정 더 있었다.
이들은 가끔 모임을 갖고 한국의 얘기를 나누곤 한다.
김티남씨는 “결혼한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한국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얘기가 많았다”며 “이후 주변에 한국으로 시집간 가정이 더 있어 서로 모임을 갖고 딸의 최근 근황을 서로 나눈다”고 했다.
하지만 김티남씨는 때론 한국으로 시집간 가정들과 모임을 가질 때면 서운함도 앞선다.
그동안 딸과 손녀를 자주 볼 수 없다는 서운함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는 “딸과 손녀가 보고 싶을 때는 결혼식 사진과 비디오를 보며 딸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한다”며 “딸과 사위가 함께 고향을 방문해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했다.
김형기기자 khk@kwnews.co.kr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