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 제1조다. 모두 8개 조항을 달고 있는 이 조약이 공포된 날이 병술년인 1910년 8월29일이다. 전날까지 대한제국이었던 나라가 일본국(식민지)이 된 첫날이다. 국권상실, 역사상 씻을 수 없는 국치일(國恥日)이다. 일본의 주장이 그렇고, 무심코 '한일합방'이라는 말을 쓰지만 우리로서는 분명 '병합'이다.
▼“내가 (벼슬을 하지 않았기에)가히 죽어 의리를 지켜야 할 까닭은 없으나, 다만 이 나라가 선비를 키워온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한 날 선비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죽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매천(梅泉) 황현(1855~1910년)의 '유자제서(遺子弟書·유서)'에 적혀 있는 구절이다. 국가의 주권을 남의 나라에 넘긴 수치를 지켜볼 수 없었던 조선 선비의 기개다. 매천은 거기에 이미 써 둔 칠언절구 절명시(絶命詩) 4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거둬 들였다.
▼8월29일은 독립에 앞장섰던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년)의 탄생일이다. 승려이자 시인이었던 만해가 내설악 오세암(백담사 부속 암자)에서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한 것도 이날 밤(1925년)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 곡조에 이기지 못하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그 님, '조국' 의 8월29일 운명이다. 독립운동가들은 이국 망명지에서도 매년 국치일 기념식을 거행했다. 치욕을 되새겼던 날이다.
▼광복 이후 달력에는 '국치절(國恥節, 8월29일)'이 있었다. 이게 한일협정(1965년) 이후 슬그머니 사라졌다. 올해가 경술국치 99주년, 내년이 100년이다. 일본 국영방송이 한일합방 100년 재조명 특별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제집 드나들듯 뻔질나게 드나든다고 한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라고 했다. 그래서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