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오솔길]보존과 활용의 경계에 서서

이진형 강원감영사적지 관리소장

어떤 사람은 문화재를 설명하는 안내판에 10초 정도 눈길을 주다가 지나쳐가고, 어떤 이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많이 다른 생경한 느낌에 잠시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이내 조용히 발길을 돌린다. 물론 정성스러운 손길로 카메라 셔터를 서슴없이 누르거나 해박한 해설사 선생님에게 끈질기게 질문의 공세를 던지는 사람도 있다.

문화재란 나와 우리의 삶을 정의할 수 있게 해주는 역사적 산물이자 계기이다. 법률에서는 문화재를 '국가·민족·세계적 유산이며 역사·학술·경관 가치'를 지닌 철저한 보호 대상으로 설정한다. 한편 국보나 보물, 사적을 비롯하여 지역 곳곳에 자리해 있는 많은 문화재를 직접 찾아보는 사람들은 보호와 보존에 동감하면서도 그 대상이 정작 우리 자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접점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문화재와의 만남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는 곧 활용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옛 사람이 살던 공간이, 그들이 가슴 깊이 믿었던 신념과 신앙의 대상이, 그들이 만들었던 최고의 아름다움과 경외의 대상이 과연 현재를 사는 우리와 무슨 연계가 있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너무나 당연한 역사적 연결을 새삼스레 강조하는 사족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은 그 연결고리를 곰곰이 생각하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을 앞서 투영하고자 한다. 보존과 활용에 대한 논쟁은 쉽게 풀 수 없는 과제이지만 적어도 양자가 모두 문화재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음미하고 전제한다면 협의할 수 있는 지점이 지금보다 넓어지리라 생각된다.

문화재란 마치 50년 평생을 간직해온 모친의 연애편지나 돌아가신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헌 시계와도 같이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순간의 증거가 되는 무엇과 비슷하다. 늘 소중히 간직하고 때때로 열어보는 그 순간 현재의 자신과 직결되는 과거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나게 된다.

문화재 수리 기술자인 대목수가 박제한 동물처럼 문화재를 지키는 것만이 완전한 보존이 되기는 어렵고, 목조건물은 오히려 실제 사람이 살면서 생활 속에서 아껴주고 보듬어줄 때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다고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진형 강원감영사적지 관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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