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이 만병통치 될 수 없어
비위생적 축사 선진화 구조로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가축전염병 방역을 위한 근본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확실한 정책목표와 방향을 갖고 방역활동을 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수행하는 방역활동은 이동제한, 소독, 살처분, 백신접종 등 4가지다. 그러나 감염된 소, 돼지가 급증하면서 이런 전통적인 방법의 방역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구제역을 가축전염병 가운데 가장 위험한 A급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지정했다.
사람과 물자의 국경 이동이 급증하면서 가축전염병 확산 위험성이 커져 가축전염병은 안보처럼 사전 대비가 그래서 중요하다. 구제역이 창궐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무런 방역태세도 강화하지 않은 채 중국 몽골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같은 구제역 발생국과 인적 물적 교류를 활짝 열었기 때문이다. 2000년 이전에 60년 이상 구제역 발생이 없었던 것은 방역을 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그들 국가와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가축 방역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체계적이고도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까지의 방역체계에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제대로 짚어야 한다. 구제역 재난을 부른 방역의 허점은 철저하지 못한 입국 검역이다. 해외에 나갔던 축산농가 입국 시 안내절차가 허술하고 검역받지 않고 빠져나가면 그만인 실정이다. 안이한 축산농가도 문제다.
지난해 검역받지 않고 입국한 축산 관계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있으나 마나 한 제재 규정도 방역의 허점이다. 미신고 시 보조금 등 지원을 배제하고 있으나 실제로 불이익을 준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축산농가 교육은 부실해 정해진 매뉴얼이 없고 아예 교육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정확한 인원과 실태를 모르기 때문에 구제역 위험국을 오가도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방역체계를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현재 거의 맹목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매달리고 있는 살처분은 구제역에 대한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특히 최근 국내에 급증하고 있는 야생 돼지에 의한 구제역 확산 가능성이 상존하기에 방역을 위한 가축만의 대량 살처분은 일정 규모의 발병에 유효할 뿐 현 국내 상황에서는 재고해야 할 방법이다. 더욱이 국내 상황에서 동물을 대량 매몰하는 방식은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영국에서 사체를 소각했던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동물복지 차원에서 가축 살처분 과정을 보완하고 바이러스 연구, 역학조사기술 향상, 친환경적 매몰기술 및 관리수준을 높이는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둘째, 검역에 대한 충실한 연구 및 현장 인력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국내 방역과 외부로부터 검역을 담당하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을 규모는 작더라도 '국립수의과학검역청'으로 승격시키는 것을 미룰 수 없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염병 확산에 전문적 권한을 갖고 신속하고 유효한 결정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또 지역별 행정체계를 기본으로 구성된 구제역 방역조직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와 같이 경북 안동에서 발생했다고 해 발생지역만 철저히 차단해 타 지역으로의 확산을 저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확산 가능성이 큰 타 지역을 포괄해 전국적인 방역체계를 동시에 구축하도록 대응체계가 갖추어져야 한다. 셋째, 현재의 밀집사육, 비위생적 축사 등을 개선해 구제역 발생 시 전파속도와 피해규모를 감소시킬 수 있는 구조로 선진화돼야 한다. 이를 위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또한 예방백신을 맞은 쇠고기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쇠고기 이력추적제와 연계해 유통단계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 넷째, 구제역 예방백신 사용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이에 맞게 구제역 긴급행동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구제역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백신 사용은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91년부터 EU에서는 EU 구제역 통제에 관한 기본지침의 수정지침에 의거해 전 회원국에 예방목적의 구제역 백신접종을 법령으로 금지하고 있다. 백신조치 시에는 도축 처리할 때까지 통제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이에 대한 관리대책도 수립해야 한다. 또한 구제역 예방백신 처방시기, 대상 선정, 접종 후 사후관리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구제역 청정국 지위 회복에 유리하게 사후관리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구제역으로 축산농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위기를 국민적 지혜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