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단풍의 조건

신목(神木)이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桓雄)은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神檀樹) 아래 강림했다. 고조선 이래 신목을 숭상한 우리 민족의 풍속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내려온다. '천년 축제' 강릉단오제는 대관령국사성황을 신목에 강신시켜 신당으로 모신다. 1728년 강릉지역에서 편찬된 사찬읍지 '임영지(臨瀛誌)'에 “저절로 떠는 나무를 신장부가 지목했다”고 적혀 있다. 그게 단풍나무다.

▼현란하고 황홀해 보이는 단풍(丹楓)이지만 사실은 나무의 무욕이다. 한여름 초록의 절정을 지나면 잎사귀의 엽록소가 붕괴되면서 세포 내에 아미노산이 모이고 안토시아닌 생성이 촉진돼 변색되는 단풍 현상으로 나타난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도종환은 시 '단풍 드는 날'에서 “(…)//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이라 했다.

▼형형색색, 만산홍엽(滿山紅葉), 그 눈부신 장관인데 어찌 감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나라의 시인 두목이 목격한 가을 풍경도 경탄스럽다. “돌 비탈길 돌고 돌아 멀리 한 산 오르는데/ 흰구름 이는 곳에 인가 몇 채 드문드문/ 가던 수레 멈추고 늦은 단풍 즐기노니/ 서리 낀 단풍 몇 잎 봄꽃보다 더 붉구나.”

▼우리네 단풍은 설악산 대청봉과 오대산 비로봉에서 시작된다. 봄꽃은 하루 30㎞로 북상하고 가을 단풍은 20㎞ 속도로 남하한다고 한다. 요즘 단풍의 질주가 한창이다. 일교차가 크고 밝은 햇살과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야 단풍이 멋스럽게 든다. 기후조건과 주변환경이 잘 갖춰지지 않으면 오히려 흉측해진다. 겨울 채비, 혹독해질 날의 대비다. 세상사, 인생, 권력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통령 사저 파동을 지켜보자니 정권의 단풍 색깔이 궁금해진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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