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처서(處暑) 단상

'칠년 대한(大旱)에 비 안 오는 날 없고 구년지수(九年之水)에 볕 안 든날 없다'는 속담이 있다. 오랜 가뭄에도 한 번쯤은 비 오는 날이 있고 아무리 긴 장마에도 햇볕 나는 날은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올 봄과 여름 유난히 가뭄이 심해 농심도 바싹 타들어 갔다. 도내 최대 곡창인 철원은 넓은 평야만큼 가뭄과 관련된 옛말이 많다.

▼'물난리 끝은 없어도 가뭄 끝은 반드시 있다', '하지까지 모만 꽂으면 먹는다', '물싸움에는 부자지간도 없다', '지금 심어도 양석(兩石)은 난다' 등이 대표적이다. 양석은 한 마지기에서 두 섬을 거둔다는 뜻. 660㎡(200평)에서 80kg들이 두 가마는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660㎡에서 80㎏들이 벼가 네 가마 내지 네 가마 반이 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6월에 모를 낸 논이라도 두 가마는 거둬 메밀 심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내일(23일)이 처서(處暑)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표현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절기다.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만큼 다 자란 벼) 패듯'이라는 말처럼 이 무렵의 날씨는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한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곡식도 준다고 했는데 때아닌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물난리다. 수확을 앞둔 농민들은 곡식이 제대로 영글지 못할까 봐 밤잠을 설친다.

▼어정거리면서 7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8월을 보낸다 하여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 했거늘, 우리 사회도 궂은 날씨처럼 혼란스럽다. 이순신 리더십은 안 보인다. 정치는 아예 실종되고 무능력과 권력의 힘만 난무한다. 교황이 떠난 자리는 다시 싸움터다. 세월호 비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군부대에선 연일 가혹행위와 성추행 소식만 들려온다. 올해 초 한 역술인이 나라의 운을 점치며 젊은이들이 많이 희생된다고 예언했다던가. 이제는 예언으로만 그치길 바란다. 법과 진리의 도착은 언제나 늦는 것인가!

김석만논설위원· smkim@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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