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린은 소문대로 온순하고 평화적인 동물임이 틀림없었다. 창경원 동물원 당국은 농구장보다 넓은 기린의 운동장에 영양이나 얼룩말 타조 등 다른 동물도 넣어 함께 운동을 시켰는데 기린은 텃세를 부리며 그런 동물들을 박해하지 않았다. 그건 아프리카 초원에서 야생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기린은 키가 크기 때문에 먼 곳을 감시하는 능력이 있어 얼룩말 영양 등 다른 초식동물이 그 주변에 모여들어 기린의 보호를 받았는데 동물원에서도 역시 그랬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기린은 자기의 신변을 위협하는 외적이나 자기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무례한 동물들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기린은 한 번 역정을 내면 무서운 투쟁을 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천적인 사자들이 덤벼들면 기린은 긴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방아처럼 내리찍는다. 그 발굽에 찍히면 사자의 두개골이 박살나기도 했다. 그래서 사자가 아닌 표범이나 하이에나 들개 등 포식동물들은 아예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동물원의 사육사들도 위험했다. 몇 년 전 남미의 어느 동물원에서 사육사가 우리 안을 청소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긴 빗자루를 휘두르면서 기린을 위협하다가 기린의 노여움을 받아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오창영 원장은 직원들에게 기린에게는 절대로 무례한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그 결과 기린은 창경원에서 큰 사고를 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창경원의 기린은 새끼까지 낳았다. 세계의 각 동물원에서 기린이 새끼를 낳는 일은 드물었다. 기린은 그 몸 구조가 까다로운 성품으로 봐서 동물원 안에서는 새끼를 낳지 못할 것으로 보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기린은 영리한 동물이었으며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에 적응하는 학습능력이 있었다. 기린은 부모나 선배들이 하는 것을 보고 학습(學習)을 했다. 6m나 되는 기린들이 어떻게 짝짓기를 할까. 자기 몸무게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기린의 수컷이 어떻게 6m나 되는 암컷의 등에 올라타 짝짓기를 할까. 기린의 암수는 기가 막히는 방법으로 그걸 해냈다. 암수가 눈이 맞으면 암컷은 최대한 몸을 낮추어 두 다리를 벌린다. 암컷의 엉덩이 사이에는 계곡 같은 열강(裂綱)이 있고 그 안쪽에 수컷의 성기를 받아들이는 질이 있었다. 그래서 수컷은 암컷의 몸 위로 뛰어오르면서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대꼬챙이처럼 길고 뻣뻣한 성기를 암컷의 열강 안으로 찍어 넣는다. 그 동작은 단 한 번뿐이었으며 그것으로 기린들의 짝짓기는 끝났다. 허무한 것 같은 짝짓기였으나 임신율은 아주 높았다. 세계 각국 동물원에서 기린들을 출산시키고 그 새끼들을 키운 예는 드물었는데 창경원 동물원은 그걸 해냈다. 평소 귀부인 모시듯 기린들을 돌봤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