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NIE 칼럼]감성의 근육을 키워준 신문

전경해 더리더 강원도 담당기자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유·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낸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을 배달하셨다. 형을 따라 새벽마다 골목을 누볐다.

“신문을 접어서 위로 탁 던지면 2층 문 앞에 틀림없이 떨어졌다. 조센징이라고 깔볼까 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더 열심히 일했지. 일본사람들도 좋은 사람은 참 좋다. 명절이 되면 먹을 것도 나눠주고 선물도 받았지. 해방될 때까지 신문 배달을 했어.”

키 작은 소년이 골목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아버지의 옛 얘기를 들었다. 형제는 배달이 끝나면 남는 신문을 가져다 읽었다.

새벽마다 배달할 신문을 받는 것으로 아버지의 일과가 시작됐다. 버스럭 신문을 펼칠 때마다 엷은 바람이 일었다. 아버지는 잠든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신문을 읽으셨다. 새벽잠에 빠진 얼굴 위로 깃털 같은 바람이 스쳐갔다. 신문은 동네 밖을 보는 유일한 길이고 활자를 대하는 최선의 창구였다. 세상의 소식들은 신문을 통해 아버지께로 전달됐고 이야기들은 걸러져 우리에게로 들려졌다. 신문을 띄엄띄엄 읽으며 한글을 깨쳤다. 한글과 한문이 뒤섞인 신문은 번번이 문맥을 끊어 읽기를 가로막았다. 손가락을 짚어가며 어려운 한문들을 가르쳐주셨다. 다 자라선 읽기가 수월한 연재소설에 빠져 신문을 기다렸다. 뒤돌아보면 내 감성의 근육들은 신문을 읽으면서 키워졌다.

읽기가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하여는 설명이 필요 없다. 까막눈을 간신히 면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아버지의 강요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2학년이 되어서야 다섯 줄을 넘긴 일기를 쓸 수 있었다. 일기는 선생님보다 아버지가 먼저 보셨다. 깨끗이 잘 쓴 일기엔 아버지의 도장과 선생님의 도장이 나란히 찍혔다. 내 어린 날을 기록한 일기장들은 서너 차례 이사를 다니는 중에도 버리지 않고 모아졌다. 괴발개발 기록한 일상들은 나보다 부모님께 더 소중한 물건이었다. 수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물건을 정리하면서 일기장을 찾아냈다. 누렇게 빛바랜 신문 조각들도 함께 들어있었다. 그것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내 것이 되었다.

40대가 되어 나도 아버지처럼 아이의 잠든 머리맡에서 신문을 펼쳤다. 대학 입시의 논술을 대비한 기사를 스크랩했다. 자식을 위한 것이라지만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 내가 더 행복했다. 아이의 입시가 끝나자 나를 위한 스크랩을 시작했다. 신문은 예전보다 훨씬 먼 곳의 소식과 정보를 전달했다. 신문은 하루 분량의 지식으로 소화하기에 버거울 만큼 용량이 커졌다. 지구촌 구석구석의 소식과 많은 사람의 이야기로 읽을거리가 넘쳐난다. 오토바이가 문 앞에 멎는다. 신문을 두고 간 배달부의 기척이다. 우편함에 들어찬 세상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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