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설악보다 더 크게 중생 품으시고… 한 줌 재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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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대종사 마지막 가는 길

30일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에서 설악당 무산 대종사의 다비식(시신을 불에 태워 유골을 거두는 불교의 장례의식)이 봉행되고 있다(왼쪽 사진). 속초 신흥사에서 설악당 무산 대종사의 영결식 후 무산 스님의 법구가 만장 행렬과 함께 다비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속초·고성=권태명기자

속초 신흥사서 영결식 엄수

“지난 밤 설악산 소리없이 울어

삼라만상이 슬퍼하는 것은

이 산중의 주인 잃었기 때문”

생전의 인연들 애사 이어져

법구는 고성 건봉사로 이운

쏟아진 소나기에도 아랑곳 않고

육신의 옷 훌훌 벗어던진 큰스님

눈물의 다비식 거행

30일 속초 신흥사 설법전 마당에서 봉행된 설악당(雪嶽堂) 무산(霧山) 대종사의 영결식은 '적멸(寂滅·불교에서 번뇌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의 괴로움을 끊음)'의 길에 오른 큰 스님을 추억하는 스님과 인연을 맺은 이들의 애사(哀詞)가 이어져 숙연함을 더했다.

평소 걸림 없는 언행으로 무애도인의 삶을 살며 스스로는 실패한 중, 떨어진 중을 뜻하는 '낙승(僧)'이라 부르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내려 놓았던 스님이지만 이날 모인 이들의 표정과 한마디 말 속에는 그가 세상에 남긴 울림이 깊이 배어 있었다.

행장 소개에 나선 무산 스님의 도반(道伴·함께 도를 닦는 벗) 정휴 스님(화암사 회주)은 “스님이 남긴 공적은 수미산처럼 높고, 항하의 모래처럼 많지만, 정작 스님께서는 그 공덕을 한번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수행자의 하심(下心)을 보여주셨다”며 “무산당, 편히 쉬시게”라고 평생 벗을 떠나보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은 “지난밤 설악산이 소리 없이 우는 것을 들었다. 계곡 물도 울먹이며 지나갔고 새들도 길을 잃고 슬픔을 참지 못해 우는 것을 보았다”며 “이처럼 삼라만상이 무릎을 꿇고 슬퍼하는 것은 이 산중의 주인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원행 스님은 “칠정(七情)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게 출가수행자의 본분이건만, 저는 오늘 참으로 비통하다”며 “영정 속 큰스님 특유의 파안대소는 '가고 옴에 연연하지 말라, 삶을 따로 가까이 두거나 죽음을 따로 멀리하지 말라'는 불이(不二)와 대자유의 법문을 무언으로 설파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성우스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분별하지 않고 대자대비의 무애행을 펼쳐 중생의 친구가 되고자 하셨던 천진무구한 대종사의 법안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진다”며 “시처인(時處人)을 초월해 자유자재하셨던 대종사님의 자비행이 아름다운 연꽃으로 다시 만개되시기를 기원드린다”고 말했다.

영결식을 마친 스님의 법구는 만장 행렬을 따라 고성 건봉사로 이운됐고, 스님,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물의 다비식이 거행되며 인연을 맺은 많은 이와 이별을 고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세민 스님과 수석부의장 대원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은 물론 무산 스님과 생전에 인연을 쌓은 김진선 전 지사,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 이근배 시조시인이 법구를 덮은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는 거화(擧火)의식에 나섰다.

이어 “불·법·승, 스님 불 들어갑니다”란 애끓는 외침 속에 거화된 연화대는 불길에 휩싸였다. 스님과 신도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쏟아진 소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육신의 옷을 훌훌 벗어던진 큰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설악당 무산 스님은 지난 26일 신흥사에서 승납 62년, 세수 87세로 입적했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39년 출가한 스님은 1977년 대한불교조계종 3교구 본사인 신흥사 주지로 취임했다. 2011년 신흥사 조실로, 2014년에는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로 추대됐고 2015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된데 이어 종단 위계서열 최고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1998년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해 만해대상 시상 등 만해축전을 시작하는 한편 이듬해인 1999년부터 강원일보와 함께 고교생 문학축제인 만해전국고교생백일장을 공동으로 개최해 고교생 문청(文靑) 발굴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한국선시의 개척자로 꼽히는 스님은 1968년에 등단해 '심우도', '아득한 성자' 등을 펴냈고, 남명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이승휴문학상 등을 받았다.

한편 이날 영결식과 다비식에는 이양수, 황영철, 심기준 국회의원을 비롯해 이수성 전 국무총리,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최문순·정창수 도지사 후보, 민병희 도교육감 후보 등이 참석했다.

속초·고성=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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